추모와 혐오
추모와 혐오
  • 나영주
  • 승인 2016.05.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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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붐빈다. 평소에도 붐볐지만, 요즈음 더 그렇다.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 때문이다. 17일 새벽 서초구 소재 주점 공용화장실에서 신학교 중퇴생 김모씨가 아무런 안면도 없는 젊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 이후, 10번 출구 앞은 추모의 물결이다.

 먼저 운을 띄운 건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감정을 넘어, 죽음을 해석한다. 그녀들은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이 여성혐오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성인 내가 그동안 무사했던 것은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다.” 이 짧은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 개인의 비극은 사회의 비극으로 전이된다. 여성혐오가 불러 일으킨 비극이라는 해석에 한편에서는 반기를 든다. 여성의 억압과 차별, 나아가 사회적 약자로서 피해의식은 이해하나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한다는 얘기다. 젊은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도한 사회구성원들의 해석은 첨예하다. 추모를 넘어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가 넘실댄다. 그동안 묵혀왔던 ‘여혐’과 ‘남혐’ 감정이다. 피해자 여성은 어떻게 기억될까.

 장면 둘.

 5. 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유족들의 반발로 기념식장에서 쫓겨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참석 이후 3년째 불참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으로 부를 것인지, 제창으로 부를 것인지 논쟁이 촉발됐고 결국 합창단이 합창하고 참석자들 가운데 원하는 사람만 부르는 형식으로 매듭지어졌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유지되던 합창 기조가 유지된 것이다. 5. 18 정신으로 국민화합을 꽃피우자던 기념식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5. 18은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수차례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5. 18 북한군 특수부대 잠입설과 같은 폄하 발언이 계속된다. 광주의 비극은 추모와 혐오의 바다에서 위태롭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누군가는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누군가는 끝내 외면하고 입을 다문다.

 장면 셋.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하여 시인 김경주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그가 울던 밤을 기억하고자 지난 23일 오후 7주기 추도식에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였다. 환영 받는 이도, 항의를 받는 이도 있었다. 그의 죽음이 ‘의로운 죽음이 아니라서’ 불참한 사람도 있었다. 여전히 노무현은 추모하는 사람들과 증오하는 사람들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대한민국의 5월은 뜨겁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때문이 아니다. 비극적인 일들이 많아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공화국의 시민들은 기억하려고 애쓴다. 추모와 혐오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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