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바보 -아가야, 내가 네 할머니다
할머니바보 -아가야, 내가 네 할머니다
  • 김동수
  • 승인 2016.05.26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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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5. 형효순

  얼떨떨한 기다림 속에서 외손녀가 태어났다. 너무 일찍 할머니가 된다는 어색함과 조금은 세월이 야속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오물거리던 생명의 탄생 앞에서 그만 나도 모르게 “ 아가야 내가 네 할머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눈을 맞추고 옹알이를 하던 첫 손녀는 ‘할머니’라는 이름이 얼마나 행복한 단어인지를 알려주었다.

  손녀는 세 살이 되면서 잠시 내게로 내려왔다. 아이는 청량제처럼 사랑을 심어주었다. 자고 나면 자라나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꽃이었고 잎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또 다시 내 곁으로 내려왔다. 맞벌이를 하기위한 특단의 조치였지만 어릴 때와 달리 많이 힘들었다. 수시로 제 부모를 그리워하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만큼 바빴던 일상이 겹쳐 돌아보면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좀 더 잘 해주지 못했던 마음이 지금도 가끔 미안 하다.

  산야가 온통 푸른 5월 중순에 친 손녀를 만나러 목포 가는 길은 설레기만 했다. 며느리가 연약해 보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손녀의 까만 눈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내가 할머니라는 사실에 수없이 감사했다. 손녀는 천생이 약간 도도하여 선뜻 품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번 안아보고 웃게 만들려고 우리식구들은 온갖 애교를 다 떨어야 했다. 연말 어린이 재롱잔치에 갔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우리손녀 서린이 만세’를 눈치 없이 외쳐 됐다.

  손자 지호가 태어나던 날 군산 가는 길은 3월인데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잠시 망설일 만큼 눈이 쏟아졌다. 잘 살 징조라고 좋아 하면서. 이렇게 나와 마주한 손자들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막내딸 아이들을 마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 아이들이 나에게서 비롯된 생명임이 분명한 그 절절하고 눈물겨운 만남의 환희, 울어도 예쁘고 웃으면 더욱 사랑스러운 내 핏줄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고개 숙여 감사 할 뿐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태어나는 자연의 섭리와 같은 것, 손자 손녀들이 잠시 내 곁에 내려오는 날은 꽃송이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설레 인다. 어쩌면 내가 책임지지 않고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내게는 귀한 열매가 다섯이나 생겼다.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열매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희망임이 분명하다. 세상 어떤 할머니가 손자들이 잘 자라고 무탈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어디에서든지 꼭 필요한 존재로 자라나기를 날마다 기원한다. 인간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어제 뿌린 씨앗의 수확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고 내일의 결실을 위해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 움직이는 모든 생물체는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가꾸어 열매를 맺는다. 그 중에 인간이 뿌린 씨앗, 꽃 중에 제일 예쁜 꽃이 아기 꽃이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뿌린 씨앗의 예쁜 싹들이 활짝 꽃을 피우고 무럭무럭 자라 열매가 열리기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 하는 할머니 바보가 되어 있다.

 

 <약력> 

   전북 남원 출생
 <수필과 비평> 등단
 전북 문인협회원, 행촌문학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엮임
 행촌문학상 수상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년>, <이래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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