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조현병 그리고 정신보건법
묻지마 살인, 조현병 그리고 정신보건법
  • 김형준
  • 승인 2016.05.24 1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역에서 있었던 ‘묻지마 살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칼로 무참히 살해한 사건 자체도 놀라운데 피의자가 여자라서 죽였다는 말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을 충격을 빠뜨리게 했다.

이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로 알려지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분노와 추모행렬이 이어졌으나 경찰 프로파일러의 심층 면담 결과 피의자는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조현병이 무엇인지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리던 정신질환으로 정신의학분야에서는 가장 심각하고 난치성 중증 정신장애로 분류하고 있는 병이다. 대략 정신의학계는 유병률이 약 1%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어 상당히 흔한 정신질환이나 증상의 특성상 사회활동이 고립되고 기능이 망가져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안되는 특성으로 주변에서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약 50만명의 환자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를 보면 한 해 약 10만명 정도가 조현병의 진단으로 진료를 받는 것으로 나와 있어 치료는 추정 환자의 1/5 만이 받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조현병의 대표적 증상은 망상과 환청, 기이한 행동 그리고 사회적 기능의 저하이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김씨는 청소년기부터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등 기이한 행동과 대인관계 기피 등 이상 증상을 보였다”며 “1년 이상 씻지 않거나 노숙을 하는 등 기본적인 자기관리 기능이 손상 등 사회적 기능이 상실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질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서 올해 1월 초에 병원에서 퇴원한 후 약물복용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누군가 나를 욕하는 것이 들린다”고 자주 호소하는 등 전형적인 피해망상과 환청 증세를 보였으며 자신을 강제 입원시킨 어머니에 대한 불만으로 2년 전부터는 “모든 여성들이 나를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형태로 망상이 변화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정신병적인 증상의 영향으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조현병 환자가 이런 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조현병의 예후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흔히 ‘삼.삼.삼’의 비율을 이야기하는데 치료를 잘 받는 경우 1/3 환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1/3의 환자는 일부 사회적 기능에 손상은 있으나 망상과 환청 등의 증상이 조절되어 타인의 보조를 받아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1/3은 치료에도 증상이 조절되지 못하고 만성 퇴행적인 경과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즉 전체 환자의 70% 정도는 치료만 잘 받는다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의 통계를 보면 일반인의 범죄율보다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재발을 잘하는 특성상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치료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관리와 꾸준히 치료를 받기 위한 제도가 중요한데 사실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정신보건법이다. 현행 정신보건법상에는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정신과 전문의 진단과 보호자 2인의 동의가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며 6개월마다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여 입원을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이 그동안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며 비판을 받아왔다.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강제입원 비율이 현격히 높고 평균 입원기간도 270여일로 OECD 국가의 평균인 20여일보다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을 근거로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정확한 명칭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조항이 인권침해와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개정요구와 함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심판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급기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강제입원절차를 매우 까다롭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정신보건법은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나 다른 전문가들과 논의되거나 합의된 것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일방적 관철에 의한 것으로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유관 전문단체들 모두에서 졸속 개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평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중증 정신질환들이 장기간 입원을 한다는 이유로 근거도 없이 입원비 및 치료비를 무조건 삭감하고 퇴원을 유도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부득이 치료가 중단된 환자들이 퇴원하는 일이 있었고 심지어 광주에서 그렇게 퇴원한 환자들이 불과 2주 만에 2건의 살인 사건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OECD 국가와 지표가 차이나는 것은 선진국은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높은 병원수가와 병원 퇴원 후 정신장애인에 대한 치료와 복지에 대한 제도와 투자가 잘 이루어진 점 때문으로 우리나라는 이 점에 대한 준비도 없이 인권문제가 대두 되니까 졸속으로 치료를 까다롭게 법을 고친 것이다.

물론 인권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기 위해 더욱 신중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번에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이 문제가 되니 다시 법을 바꿀 것인가?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안전과 인권, 치료와 복지를 동시에 잡기 위한 투자와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