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이문수
  • 승인 2016.05.24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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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은 다원주의의 논리를 통해 다각적으로 발화하고 있다. 그래서 두텁고 다양한 결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현대미술의 가치와 힘은 무엇일까?’ 생뚱맞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오늘은 이 물음을 던져보자.

 수직적인 거대담론을 넘어선 현대미술은 창작하는 이유가 다양하고,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가지 개념들이 뒤섞여 있다. 미술가 개인이 단위가 되어 갖가지 이론과 형식을 창의적으로 선택하고 조합해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감상자는 이것을 어떻게 보고, 느껴야 한단 말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창작자 입장에서도 난처한 것은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미술의 속성 자체가 개념으로 가두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기본으로 되돌아 가 볼 필요가 있다. 기본이 아니면 기본이 아니니까.

 필자 주변에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버글버글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린 시절에 ‘그리면서 노는 즐거움’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학습의 틀 안에 속하기 전에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그리기 자체에서 희열을 맛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기 자체가 흥겨운 장난이고, 즐거운 놀이었고,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그 후에 제도권에 들어와서는 미술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타고난 소질이 시나브로 드러나서 칭찬을 받았는지, 칭찬 속에서 소질이 계발되었는지는 선후의 시비를 가리기 어렵지만. 필자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믿는다.

 가장 기본은 창작자든 감상자든 즐거움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성숙한 언어를 배우고 깨달아야만 한다. 예술이란 사회의 헤게모니적인 집단의식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간주해 보면, 우리는 역사라는 거대하고 도도한 시간의 강 속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는 성숙함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역사적 기초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시점에서 유행하는 예술과 문화이론을 단편적으로 접하면서 자신과의 관계성을 찾으려는 억지 노력을 하는 때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헛갈린 해석이 마치 ‘현대미술의 특권’인 양 어설프게 포장하면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하나의 사과나무에도 서로 다른 색 사과가 열릴 수 있다. 태양이 많이 비치는 쪽 사과는 광합성 작용으로 빨간색을 띤다. 당연히 반대쪽보다 유난히 빨간색을 띨 것이다. 하지만, 빨간색 사과만을 본 사람은 ‘사과는 무조건 빨간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 쉽다. 그러나 같은 사과나무의 다른 가지에는 파란색 사과도 있지 않은가.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론>에서 ‘예술에서 더는 새로운 시도는 없다. 예술가들의 모든 미학적인 시도는 이제 우열의 잣대가 아닌 다양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꽃인 예술의 진정한 힘은 복잡한 현실에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르게 파악하는 능력, 다양성과 통찰력을 가진 창의력이다.

 먼 옛날에 왕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백성들이 모두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석학을 불러들여 연구했다. 사방에서 모인 현자들은 12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편찬해서 왕에게 헌정했다. 왕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치면서 이르기를 ‘더 줄여 오라’고 했다. 석학들은 12권의 책을 한 권으로 줄였으나, 또 거절했다. 수차례의 내침 끝에 종이 한 장 분량으로 압축했다. 그때야 훑어보더니 한 줄로 줄이라고 다시 명했다. 현자들이 제시한 아포리즘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다.

 자기 처지를 불행하게 여기는 사람의 변명은 수천 가지로 다양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데도 지금 여기에 있고, 행복하다’고. 인디언 처녀가 춤을 추면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왜냐면 비가 내릴 때까지 춤을 추기 때문이다.

 다양한 현대미술을 통해 통찰력을 가진 창의력이 그냥 생기겠는가. 가치 있는 것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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