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정책
뒷북정책
  • 이한교
  • 승인 2016.05.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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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북’이란 어떤 일이 끝난 다음에 쓸데없이 수선을 피우는 일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당연히 새로운 정책을 시작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 못지않게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추진하겠지만, 일부 성공하지 못한 정책에 대해선 책임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직무를 태만하고 있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보인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이 숙제 정리를 잘못해서 노트를 찢어버리거나 새 노트로 바꿔치기하는 게 학부형의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성숙한 학생이라면 아까운 줄 알고 지우고 쓰거나 지울 수 없다면 두 줄을 긋고 다시 이어서 써야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잘못된 흔적을 보며 각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일부 정부 정책에서 그런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책이란 많은 인원과 천문학적인 예산이 수반되므로 신중한 검토와 고민이 필요한데도, 이번 대학의 이공계 증원 정책은 왠지 강박 장애로 인해 태동한 정책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얼마 전 문과대 정원을 줄여 공대생 1만 명을 1∼2년 안에 늘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언뜻 보기엔 획기적인 정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논란거리가 될 것 같다. 알다시피 그 나라의 교육은 백년대계다. 따라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으로 봐선 좋은 정책이라고 말하기보단 지난해 7월 ‘청년고용 절벽 해소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로 보인다. 문제는 왜 인제야 뒷북을 요란스럽게 치냐는 것이다안 수많은 사람이 모순을 지적했고, 교육제도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좋은 의견을 내놓았는데도 가만히 있다가, 마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극약처방을 내리는듯한 정책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동안 이공계를 홀대하지 말라고 외치던 때가 바로 수개월 전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인문계가 홀대받고 있다며, 대학 정원은 그대로 놔둔 채 1만 명을 공과대학으로 전환 시킨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의 대학 진학률은 제조업의 중심국가인 독일의 3배에 이른다. 이공계 역시 36.5%로 OECD 국가 중 1위다. 엄밀히 따져보면 현재도 많은 게 공대생이다. 더구나 고교 졸업자가 해마다 급감하는 마당에 대학 정원을 그대로 놔두고 공대를 늘리려는 발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또 한 번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분명히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든다는 통계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을 정부가 고급인력 확충이라는 명목 등을 내세워 대학 정원을 자율화하는 바람에 30% 내외로 머물던 90년대의 대학 진학률이 84%까지 올라가고, 고급인력은 넘쳐났지만, 일자리는 있는데 일할 사람은 없고, 끝내는 외국에서 인력을 수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미 뿌리 산업은 외국인 근로자가 접수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본다. 원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만든다는 게 결국 젊은이들을 방황하게 하였고, 이공계는 외면하고 문과를 선호하는 풍조가 퍼지며 사실 이공계 홀대를 받아왔다. 그 결과 포화상태에 이른 인문계열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이공계로 몰려드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자연적으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정부가 나서서 강제적인 이공계 증원을 들고 나온 것이. 필자가 보기에 머지 않아 파행을 겪게 될 것으로 본다.

 현재 청년실업을 해결하려면 대학 정원을 90년대 초반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고 고교 졸업자의 산업체 경력을 대학 학력 기간으로 인정하여 대졸과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시간당 임금 격차를 비교해 보면 80년대엔 39.6% 97년도엔 19.5% 다시 2007년도엔 30%까지 차이가 나고 있다. 이 격차를 줄여주고 중소기업의 작업환경을 개선해 주면 된다. 만약 어렵다면 인센티브로 일정 금액을 적립해 장기 근속자에게 목돈을 마련할 기회를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주면 된다. 이렇게 되면 외면하던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은 공대생을 늘릴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그런 돈이면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장비와 인력을 교육기관에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 임금이 열악한 비정규직이 양산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로 보면, 대기업 비정규직 64% 중소기업 정규직 52% 중소기업 비정규직 35%로 그 차이가 엄청나다. 이 상태로는 무슨 정책을 내놓아도 고용이 안정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위화감을 주고 갈등만 심화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처지에서 보면 이번 정책이 반드시 성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청년실업이 해결되고 희망찬 미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또다시 실패하면 머지않아 뒷북칠 여력마저 소진되어 결국 강대국의 경제지배하에 놓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이한교<한국폴리텍대학 김제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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