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수공예로 디자인하자
전주, 수공예로 디자인하자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6.05.11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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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 상상 그 이상의 도시를 꿈꾸다]<하>

▲ 양국의 마에스트로 :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고가구를 복원하는 레나또 올리바스뜨리(왼쪽)씨의 공방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 김동식(오른쪽에서 두번째)씨가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미진 기자)
 이탈리아 피렌체는 ‘르네상스’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수공예(handcraft)에 대한 오랜 전통을 쌓아온 도시다.

 공예 관련 법률이 존재하는 대표적 국가 중 하나로, 그 탄탄한 제도적 기반 등에 힘입어 EU국가 중에서 대표적인 공예품 생산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각 도시에는 중세부터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소규모 생산자들의 협동조합 발달돼 있으며, 피렌체에서다 많은 공방에서 다양한 수공예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법률에 의거해 각 지방정부에 의해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데, 피렌체시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Maestro)들을 위해 단기와 장기적으로 지원한다. 협동조합이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하거나, 큰 페스티벌을 열어 장인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활로를 모색해주는 방식이다.

 물론, 제도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탈리아에도 산업화의 길에 진입하지 못한채 사장될 위기에 처한 수공예 장인들도 존재한다.

 고가구를 복원하는 일을 하는 레나또 올리바스뜨리씨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엔틱 시장이 하향길로 접어들어 현재의 시장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가구 수리를 맡겨오는 경우가 많아 공방에 여러 명이 근무를 했었는데, 현재는 1년에 2개 정도 수리 의뢰가 들어오는 수준이라는 것. 그는 “이 공방이 위치한 골목에는 다양한 공방이 있었는데 많이 문을 닫기도 했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곳들은 모두 80세가 넘은 사람들만 남아 그들이 끝나면 문을 닫을 형편이다”고 말했다.

 열네 살이 되던 해부터 고가구를 수리하고 복원하는 일을 배운 그는 1982년에 피렌체에 자리를 잡고 관련 학교에 다니며 이론까지 겸했다. 30여 년 전 그의 스승과 함께 현재의 위치에 공방 문을 열었고, 스승이 돌아가신 뒤부터는 지금까지 홀로 공방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평생을 고가구 작업에 매달려온 장인에게 남은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닌,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라이센스가 전부인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전주지역에는 공예부문 무형문화재가 17명이 활동하고 있지만, 열악한 작업환경과 전수자 한 명도 마음 놓고 두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실제, 김동식 선자장도 지난해 중요무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됐으나 사실상 그의 주변 상황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5평 남짓한 살림집 방 한 칸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모든 공정을 혼자서 소화하면서 묵묵히 부채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아들 김대성씨가 아버지의 기술을 물려 받겠다고 함께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 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실적인 위기를 뛰어 넘어 수공예 산업의 중심지로 전주가 새롭게 디자인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전주야 말로 수공예 산업을 그 어느 지역보다 앞서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큰 도시임에 분명하다. 최근 전주의 수공예품들이 이탈리아 피렌체 포르테짜 다바소에서 열린 ‘피렌체 국제 수공예 박람회’에 참가해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전주공예산업은 이미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수십 년 전부터 꿈틀거렸다. 전주 지역의 주요 전통공예공방들이 교동과 풍남동 등에 밀집해 있으며, 공예를 특성화한 다양한 문화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전주대를 비롯한 관련 학교에서 공예인력들을 배출하고 있고, 한지와 도자 등 각종 공예 교육이 수시로 다양한 장소에서 이뤄지면서 생활문화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지난 2005년 지자체 최초로 선보인 천년전주명품 ‘온(Onn)브랜드’는 장인의 손맛을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전주의 도시 이미지를 끌어 올린 사례도 있다. 이에 200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천년전주명품사업단을 통해 무형문화재와 아트디렉터, 디자이너가 협업해 매년 다양한 상품들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한국적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 오고 있다.


여기에 전주의 장인들이 지니고 있는 기술과 고유소재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자랑한다. 가구와 문살, 옻칠, 한지발, 태극선, 합죽선, 나전, 악기, 침선, 단청, 지우산 등 전주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기법에 디자인과 마케팅이 더해지고, 유통활로만 모색된다면 이를 문화와 산업적 가치로 끌어올리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최근에는 전주시에 한국전통문화전당이 들어서 보다 전문적으로 한국공예정책 전반의 흐름을 이해하고, 관련 정부 부처와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발판까지도 마련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더 늦기 전에 전주시가 수공예 관련 컨텐츠를 선점 해야할 필요성이 크다는 여론이다. 전주시에 산재한 수공예 관련 다양한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보다 적극적으로 생산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끝>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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