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의 세시풍속
사월 초파일의 세시풍속
  • 고재흠
  • 승인 2016.05.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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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8일을 사월 초파일이라고 하며, 이 날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이라고 한다. 초파일은 부처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날이다.

석가는 BC 624년 음력 4월 8일 아침 북인도 카필라 왕국〔네팔지방〕의 왕 수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가 태어난 날은 2월 8일 또는 4월 8일 자월·인월(子月·寅月)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고, 한국에서도 음력 4월 초파일을 석탄절로 기념하며, 1975년 1월 27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지정하여 41년이 되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초파일의 대표적인 행사로는 연등과 탑돌이가 있으며, 수부희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일명 물장고라고도 하는데, 물이 가득 담긴 물동이에다 바가지를 엎어 놓고, 가는 싸리나무로 박자를 맞추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태평고와 유사한 뜻이 있는데 경도 잡지에는 수고(水鼓)라고 표시하고 있다.

초파일은 원래 불가에서 기념행사를 하는 날이었으나 불교가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불교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민중의 삶 속에 자리 잡게 되면서, 우리 민족의 명절로 정착하게 되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 왕 때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매우 다양한 신(神)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불교(佛敎)가 전해지고 난 뒤에는 많은 백성들의 신앙심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었다.

특히, 삼국 가운데 신라는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교국가”라 할 만큼 불교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대단했었다. 그리하여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연등행사를 매우 성대하게 치렀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것은 고려시대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왕성(王城)에서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대보름에는 14~15일 이틀간을 저녁에는 연등(燃燈)을 하던 풍속이 있었으나, 당시 최충헌의 아들 학자 최이(崔怡:1249)에 의하여 음력4월 8일로 옮겨지게 되었다.

초파일을 앞두고 절이나 가정에서는 등을 만들었는데, 등에다가 집안의 평안을 비는 내용의 글을 적어서 집 바깥의 줄에 내 걸었다. 사월 초파일 밤이 되면, 수도 개경에서부터 시골 마을까지 나라 전체가 등불로 환히 비췄다고 한다.

등(燈)의 종류는 봉등·학등·용등·알등·공등·배등·종등·북등·병등·수박등·마늘등·연꽃등·칠성등·오행등·일월등·누각등·난간등·화분등·가마등·머루등·방울등·거북등·잉어등·자라등·수복등·태평등·만세등·남산등·선인등·목단등·가마병등·항아리병 등 아주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등의 제작은 종이나 붉고 푸른 갑사에 운모(雲母)를 박아 바르기도 한다. 그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거나 고사(故事)의 인물상이나 동물그림 등을 그려, 천태만상의 오색찬란한 여러 가지 모양의 등을 만들어 달았다.

석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라 하여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석존은 성도 후, 당신의 깨달음의 내용을 45년의 긴 세월 동안 쉼 없이 전해 주었다. 80세에 쿠시나가라 국의 살라나무 숲 사이에서 많은 제자들에 둘러 싸여 입적할 때까지, 그 분의 행함과 깨달음과 그 가르침이 너무 소중하기에 우리는 이날을 예배·공경·찬탄하고 있다.

이처럼 사월 초파일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온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고,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날이다.

 <수필가 고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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