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있는 개혁
호남 있는 개혁
  • 나영주
  • 승인 2016.04.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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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사람들은 ‘정치적 감수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에서 15년을 살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종로사람들보다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과 나름의 스탠스가 명확하다고 본다. 한국정치의 지형에 있어 항상 소수세력이기 때문에 투표행태도 강남사람들만큼 전략적이다. 예민한 정치적 감수성의 결과로서 전략적 선택이 지난 수십 년간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로 귀결된 것은 아이러니긴 하지만 말이다.

 총선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집권여당은 참패에 좌절하고 제1야당은 예상외의 성적에 의기양양하다. 원내 3당으로 진입한 정당은 환호에 들떠 있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호남사람들의 선택이다. 호남 대부분 의석을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에 몰아준 결과에 대하여 한편에서는 영남패권주의의 대칭항으로서 호남지역이기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항상 전략적인 선택을 해왔던 호남이 ‘호남 자민련’의 틀에 자신을 가두었다는 평가다.

 이번 호남사람들의 판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호남사람들이 해왔듯, 아니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욱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87년 체제 이후 정치적 올바름은 전략적 선택과 같은 길을 걸어왔으나, 이번 총선에서 양자는 결별하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다시 말해 당위와 전략의 분리다.

 호남사람들이 의도했는지는 불명하나, 제1야당과 결별함으로써 전통적인 민주개혁세력으로 불려온 제1야당 운신의 폭을 넓혀줬다. 제1야당의 수도권과 영남에서의 선전은 결과론이긴 하지만 총선과정에서 호남유권자들이 맹목적인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의사가 제1야당의 지역정당색을 덜어줬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또한, 호남인들은 제1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도 한편으로 정치적 지분권을 여전히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전 대표의 말처럼 호남의 지지가 없는 민주개혁세력의 대통령 후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은, 제1야당이 아무리 수도권과 영남에서 지지세를 넓혔어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보수여당을 찍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존 야당을 이제 마냥 지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표시는 87년 체제 성립 이후 호남인들의 선택 가운데 가장 전략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흔히 호남인들의 전략적 선택의 예로 꼽는 2002년 대선에서 영남출신인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 사실보다도 더욱 그러하다.

 영남의 개혁세력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게 지역색을 뺀 개혁적인 제1야당과 호남의 지지를 받는 제2야당의 조합은 대선에 있어서 ‘호남당+영남후보’라는 전략의 근사한 변주이자, 소선거구제 한계를 다소 극복한 묘수다. 한편으론 대선에 있어서 여전히 제1야당의 구애를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남겨둔 선택이었다.

 2016년 3월 2일자 도민일보 칼럼에서 필자는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해 썼다. ‘성스러운 호남’의 선택은 언제나 민주주의와 서민경제와 같은 숭고한 가치를 추동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어야만 한다는 당위가 오히려 호남사람들을 속박한다는 취지였다. 이번 총선 결과가 호남 있는 개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제1야당과 제2야당 모두의 분발이 필요하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나아가 정치적 소수라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호남인의 선택을 두고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무지할뿐더러 무례하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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