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은 재미있는 조각판이다
운동장은 재미있는 조각판이다
  • 박성욱
  • 승인 2016.04.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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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쌤& 진쌤이 전하는 生生한 교육이야기(3)

비오늘 창 밖을 보면서

오늘 새벽부터 내린 비가 한 나절 내내 내렸다. 벚꽃 잎이 떨어지고 요 며칠 누런 황사, 뿌연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가 나빠졌던 터라 비가 참 반갑다. 산 허리를 두르고 있는 낮은 구름들이 참 깨끗하다. 운동장에 내리는 비 따라 작은 물길이 생겼다. 아이들이 잽싸게 뛰어다니며 놀던 오징어 놀이, 달팽이 놀이 그림들이 작은 물길을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저 만치 운동장 가장 자리에 발목 복숭아 뼈 정도 깊이의 물웅덩이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다. 아이들이 파 놓은 구덩이들이다. 텃밭, 화단, 화분을 가꾸는 호미, 모종, 조랭이가 아이들 장난감이 되었다. 두더쥐 처럼 여기저기 파놓고 돌아다닌다. 크게 뭐라고 하는 선생님들이 없으니 온 운동장이 조각판이다. 문득 지난 여름 비가 많이 내리던 날에 일어난 추억이 떠올랐다.


과학수업을 하다가

3학년 과학교과서에 ‘지표의 변화’ 단원이 있다. 운동장에 흐르는 빗물을 관찰하면서 물에 의하여 지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공부하는 내용이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참 배움은 직접 몸으로 겪을 때 일어난다. 단순하게 교과서 진도에 맞추다 보면 지식으로만 알고 넘어간다. 하지만 생생한 경험이 지식과 지혜로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직접 비 오는 운동장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공부를 한다. 처음에는 물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신발 (장화나 고무신, 등산화 등)을 신고 물길을 찾아 침식, 운반, 퇴적 작용을 설명하고 상류 중류 하류를 설명했다. 그러다가 꺼슬꺼슬하면서도 부드러운 운동장 바닥을 맨 발로 걷게 했다. 시내에서 전학 온 친구는 느낌이 이상하다고 신발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너도 나도 다 벗고 돌아다니니 혼자 신발 신고 있기가 그랬던지 얼마 되지 않아 맨발로 합류했다.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모래 섞인 흙, 빗물과 첨벙첨벙……. 무엇인가 재미있는 놀이가 없을까?

“애들아! 우리 수중 도시 만들자!”

“야호!”

모둠별로 멋진 도시를 만들었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통일

댐과 수로를 만들었고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배도 만들었다. 수로를 따라 멋진 건물들이 들어섰고 어느새 여기 저기 마을이 만들어졌다. 서로 자기 마을이 멋지다고 자랑질이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외쳤다.

“우리 그냥 통일 시키자!”

“그래.”

따로 따로 떨어져 있던 작은 모래 마을들을 하나하나 물길을 내서 연결했다. 마을과 마을이 만났고 아이들의 마음이 만났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이이가 외쳤다.

“우리 교감 선생님께 편지쓰자!”

“어떻게?”

“운동장에 커다란 글씨는 쓰는 거야.”

누구나 한 번 쯤은 노트나 편지지에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써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이제껏 살면서 써 본 글씨 중 가장 큰 글씨를 운동장에 큼지막하게 썼다. “교감 선생님 ♡ 감사해요!”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교감 선생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고 이 모습을 보는 교사들은 어느덧 이렇게 사랑스럽게 자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

구이초등학교 박성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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