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대전환’ 위한 고정관념·기득권층 깨기
전북 ‘대전환’ 위한 고정관념·기득권층 깨기
  • 이헌승
  • 승인 2016.04.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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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큰 새인 타조의 알은 매우 두껍다. 보통 2mm이니, 달걀보다 10배 가까이 두껍다. 소형트럭이 볼록한 조각 위를 지나가도 깨지질 않을 정도다. 이런 두께의 껍데기를 깨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 어린 생명이 그 두께를 깨기 위해 얼마나 꾸준하고 힘겹게 노력할까? 타조의 평균수명은 40∼45년이지만, 무려 100년 넘게 사는 타조도 있단다. 그토록 두꺼운 껍데기를 뚫고 나왔으니, 그렇게 장수할만한 자격을 충분히 지닌 셈이다.

 생명의 생산은 껍데기를 깨야 시작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줄탁동시’도 필요하다. 이는 알 속의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그 안에서 쪼는 것(줄)과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탁)이 동시에 행하여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안팎에서 두 생명체의 협업이 이뤄지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수고의 효율성은 더 높아진다.

 고정관념은 두꺼운 껍데기다. 알 속의 병아리나 타조가 뚫어야 할 껍데기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고정관념은 과연 얼마나 두꺼울까? 개인의 고정관념은 심지어 목숨을 건다. 단발령(1895)에 대해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는 최익현이 바로 그랬다. 사회적 고정관념은 장기간 오류를 강요하고, 진실을 가둔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틀린 천동설은 1,400년이나 서양 우주관을 지배했다. 진실로써 유죄를 선고받은 갈릴레이(1633)는 360년이 지난 1992년에야 복권되었다. 고정관념의 두께는 어쩌면 무한할 수도 있다.

 고정관념은 장벽을 형성한다. 이 관념에 얽매인 개인은 폐쇄적이다. 이론·사상·종교·문화 영역에서 고정관념의 장벽에 갇힌 개인은 개방과 변화를 거부한다. 이런 개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집단적인 이익을 고수하면, 기득권층이 형성되며 갈수록 굳어진다. 기득권층이 강한 사회는 공정한 경쟁보다 불공정한 담합을 선호한다. 이런 사회에선 개인의 실력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끌어야 할 경제마저 힘과 끈으로 얽히고설킨 하급 정치기술로 지배한다. 혁신하는 기업가정신보다 보조금을 따먹는 연줄의식이 더욱 조장된다.

 창업은 기업의 탄생이다. 창업에는 수고와 고통이 뒤따른다. 타조가 알껍데기를 깨야 하는 것처럼, 창업가들은 자본·기술·금융의 껍데기를 뚫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영업·수익·투자는 이들에겐 넘어야 할 높은 장벽이다. 그런데 이 껍데기와 장벽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더 넘기 어려운 장벽이 우리지역에도 존재한다. 전자는 곧 고정관념이고, 후자는 바로 기득권층이다.

 고정관념은 개인의 창의와 도전을 가로막는다. 이 관념이 창업보다 공무원을 꿈꾸도록 청년의 쏠림행동을 부추긴다. 기득권층은 창업가를 좌절시키고, 기업가정신을 억누른다. 그 기득권층이 우리지역의 미래기반인 탄소·농·생명산업에서조차 창업가의 의욕을 떨어트리는 장벽으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쟁의 공정성, 경영의 효율성 및 자금의 생산성은 떨어질 것이다. 창업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되어서 결국 우리지역 기업생태계가 불건전해질 것이다.

 우리 전북의 ‘대전환’은 고정관념과 기득권층 깨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안주·패배·소외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우리지역에서 국제특허를 가진 미생물업체의 좌절과 시장성을 충분히 확보한 창업기업들의 한숨은 기득권층의 담합·안일·책임회피 때문이다. 지난 4.13 총선의 여당후보 당선과 정치역학 변화는 곧 고정관념과 기득권층 깨기의 선례다. 부디 건전한 창업가들과 정치·행정·교육 지도자가 ‘줄탁동시’로 전북 ‘대전환’을 가속시키길 기대한다.

 이헌승<전라북도 경제분석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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