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오 분 전’입니다
‘개판 오 분 전’입니다
  • 이문수
  • 승인 2016.04.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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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과 권력 그리고 미술은 가끔은 은밀하게 대부분은 노골적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돈과 힘이 있는 곳에는 항상 미술이 있었다. 미술은 언제나 이들과 동행했다. 미술과 권력이 사이좋게 동거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픈 미술가들은 일자리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고, 권력자는 뭔가 ‘있어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다.

 수백 년 동안 권력의 충성스런 ‘시녀’였던 미술. 항상 누군가를 위해 존재했던 미술이 19세기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권력과 돈이 주는 안락함을 내던지면서 자유를 얻었다. 누군가의 주문에 의한 제작이 아니라 미술가 스스로 그리고 싶은 주제를 설정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권위에 도전한 전위적인 미술가의 행위는 사회적 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거절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체제를 거절한 미술의 불복종은 ‘저항정신’이라는 또 다른 본질과 가치를 발견하고 추구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권위나 규범에 대한 저항을 기본정신으로 하면서 일탈과 파격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통한다. 불가피하게 현대미술이 가지는 저항적인 본질과 가치가 제도적 한계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미술관이라는 건축적 공간에서 무장 해제되어 선보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마르셀 뒤샹의 ‘변기’조차 클래식이 된 지 오래전 일이다.

 현대미술의 저항정신과 그것을 수용하는 미술계나 관객 사이에 놓인 딜레마가 이것이다. 미술관, 비평가, 미술사학자들은 전시와 글, 더러는 강의를 통해서 현대미술을 개념적으로 가두면서 규정하려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 감상자와 현대미술 사이의 간격이 좁아져 버리면 현대성이 소진해 버린다. 그리고 미술가는 저항하는 도망자일 수밖에 없다. 추격은 계속될 것이고, 추격이 계속되는 한 미술은 더 빠른 걸음으로 달아날 것이다.

 잰걸음으로 도망치는 현대미술이 잠시 멈추어 서서 친근하게 관객을 부르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오는 5월 22일까지 가정의 달을 맞아 열고 있는 특별전. 16명의 미술가가 독창성을 발휘해서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현대미술의 저항정신을 순화해서 선보이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미술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꿈꿀 수 있는 전시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구경만 하는 관람에서 벗어나 유쾌하게 체험하면서 예술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전시다. 주말에는 도립미술관에 1,000여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온다. 한강 이남에 이렇게 많은 관객이 모이는 미술관을 찾기 힘들다. 전북미술이 예나 지금이나 층이 두텁지는 않지만 탁월함을 보였고, 현재도 선명한 개성과 다양함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문화적으로 준비된 도민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이 있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엉망인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가 흔히 욕처럼 비속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말이 생긴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낙동강 아래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국제시장에서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밥을 배급할 때 밥을 짓고 다 된 솥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판 오 분 전”이라고 외쳤다. 굶주린 피난민은 밥을 배급받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개판 오 분 전’이란 밥솥 뚜껑을 열기 5분 전을 표현한 말이다.

 가난의 조건이 배고픔이라면, 지금 한국사회는 가난하지 않다. 하지만, 정신적인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예술은 정신적인 밥이다. 도립미술관에서는 정신적인 밥을 짓고 외친다. “개판 오 분 전”이라고.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식구고, 서로 나누는 것이 사랑이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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