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운다.
자연에서 배운다.
  • 진영란
  • 승인 2016.04.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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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해득 검사를 이틀째 하고 있다. 고무줄도 못하고, 나들이도 생략했다. 나들이라도 가자고 졸라주면 좋으련만...검사를 하는 아이들 등이 축축하고 뜨끈하다. 많이 긴장하고 힘들었나 보다. 아이들이 블록을 서로 가지고 논다고 싸운다. 슬슬 신경이 날카로워 질 무렵 “노래 들려주세요!” 누가 말문을 열었을까? 그러고 보니 맨날 부르던 노래도 안 부르고 오늘 교실분위기가 이상하다. 정신을 차리고, 그림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나서 이오덕 선생님의 시 ‘우리 말 노래’를 사절지에 베껴 쓰고 그림을 그렸다. 처음치고는 정말 잘 하는 편이었는데 자꾸자꾸 똑같은 질문을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해 온다. “얘들아, 자기가 생각해서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알아서 하는 거야! 일일이 나한테 물으면 선생님은 17번씩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잖니?” 말 해놓고도 웃음이 나온다. 역시 저학년을 별로 안 해본 티를 낸다. 미안한 마음에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어 주었다. 아이들이 웃는다.

 점심을 먹는 아이들 표정이 행복하다. 점심 먹고는 나눔장도 쓰고, 다음 주 주간안내도 작성해야 하는데 아인이가 하늘색 비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비옷 입은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나도 우산을 들고 따라나섰다. 남자 아이들 몇이 동행한다. 율성이는 막 달려오더니 우산을 접었다가 펼쳐서 빗물총을 쏜다. 그리고 활짝 웃는다. 눈이 시도록 예쁘다. 태석이는 유치원 창문아래 피어 있는 수선화 개수를 센다. 서른 송이도 넘게 피었다. 수선화라는 말에 아인이가 “선생님,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수선화 총각 나르키소스가요~” 한참 신화를 설명하다가 나를 보고 묻는다. “그런데요, 선생님 수선화 꽃이 어디 있어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줄줄 꿰면서 정작 수선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다니! 나들이를 더 열심히 해야 겠구나. 그래서 이 아이들의 메마른 지식과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 겠구나.’ 담임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선화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수선화처럼 풍성한 치마를 입은 여인이 파티에서 멋진 왕자님과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아인이는 정말 자연에서 수많은 것들을 끌어내는 아이다. 제인이는 꽃은 안중에도 없고 나만 따라다닌다. 그 모습도 싫지 않다. 빗소리도 듣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방울 보석 감상도 하고, 목련꽃망울이 얼마나 부풀었는지 목련나무 아래도 서성거렸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회양목 꽃봉오리가 생겼길래 우산 끝으로 가리키며 “아인아, 이게 회양목이라는 나문데 나중에 연두색 꽃이 정말 예쁘게 핀단다” 아는 척을 했더니 “선생님, 그런데요. 우산으로 저 나무를 가리키면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맞다. 나라도 그랬겠다. 자연이 스승이라며 자연에서 배우자고 떠벌려 놓고는 생명도 영혼도 없는 것처럼 함부로 대한 내가 부끄러웠다. 오늘은 아인이한테서 참 많이 배운다. 신발장에서 장화를 벗으면서 “아,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어요.” 방긋 웃는다. ‘나도 그래, 오늘 정말 행복하다. 내가 장승에 온 보람을 다시 한 번 느낀단다. 그리고 너처럼 맑은 아이를 만나 정말 다행이다.’

 

진안 장승초등학교 진영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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