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규, 백제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풍류의 시인
진동규, 백제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풍류의 시인
  • 김동수
  • 승인 2016.04.0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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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3>

  전북 고창 출신으로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8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 시집으로 『꿈에 쫓기며』(문장사. 1982)와 설화로 전해오는 <서동요>를 시극으로 쓴 『일어서는 돌』(1994)과 『곰아 곰아』(2013)가 있다.

  수난 받은 땅의 역사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야성의 율조에 담아 시에 음영(陰影)을 더한 입체적 서정의 시인이다. 전주 신흥중 교사와 『전북 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표현』 회장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달도 없는 겨울 하늘
  기러기 몇 마리
  돌멩이처럼 박혀 있다
  길 떠나는 몸짓 그대로
  언 강을 굽어 본다
  이여- 이여-
  저 비탈에 서서
  제 빛으로 휘파람 부는 나무야
  이여어- 이여어-
  소리해 불러보다가
  언제부터 와 있는
  소리 하나 만나고
  언 하늘
  어깨동무하고 떠 간다.

  - 「기러기 떼」 전문, 1982

 
  진동규의 초기시에는 ‘돌’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돌’의 뒤에는 지난날의 고난이 배어 있다. ‘겨울 하늘/ 기러기 몇 마리/ 돌멩이처럼 박혀’ 떠나지 못하고. ‘이여- 이여-’ 불러보다가∼언 하늘/ 어깨동무하고 떠간다.’도 어둡고 긴 어린 날 가슴에 박힌 고난의 음영에 다름 아니다.
 
  물 위에 떠서 사는 물옥잠 호수가 넘치면 어디로든 흘러 흘러간다 호수가 노래한 경을 받들고 떠간다/···/물기둥을 세웠던 자리에 하늘과 호수가 피워내는 무지개, 세상의 시작과 끝, 세상 가운데 한 장 꽃잎이다 꽃술 한 대에 속눈썹 겉눈섭 두르고 천둥번개다 받아낸 속곳 노란 광배에 남보랏빛 채알은 초례청이지 옥잠에 걸친 족두리는 벌써 건넌산 메아리의 장단이다/우리가 천당보다 높은 십자가를 짓고 극락보다 화려한 불전을 짓는 동안 부유식물인 물옥잠은 광풍이 일고 사라지고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무지개가 챙겨 넣는 경을 ?았다 황홀한 경이었다 하늘과 호수가 하나였던 선도 악도 없는 경. - 「부레옥잠의 경」에서, 2013

  ‘넘치면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것이 극즉반(極卽反)의 세게요 도(道)의 세계다. ‘물옥잠’이 호수에 ‘머물다’ ‘흘러가니’ ‘행(行)함’이 ‘멈춤(住)’이요, ‘흘러가면서도’ 또한 ‘경을 받들고 가니’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항상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렇게 상반된 두 세계가 하나의 동일성으로 이어지면서,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으니 ‘있음(有)이 없음(無)에서 오는’ 유생어무(有生於無)의 세계이도 하다. 이러한 역설적 구조 속에서 그의 시는 어느새 ‘호수’와 ‘물옥잠’이 하나가 되고, ‘꽃잎’과 ‘경(經)’이 하나 되는 장자의 물화경(物化景)을 이루게 된다.

  ‘피어나는 무지개’(景)의 모습이 그것인데, 그것은 광풍과 천둥의 풍상을 겪고 난 뒤에 만나게 되는 ‘황홀경’이다. 아니 ‘경(景)이 경(經)’으로 바뀌는 경지다, 물옥잠과 호수가 하나가 되고, 호수와 하늘이 하나가 되고, 하늘과 무지개가 하나가 되어, 마침내 색(色)과 공(空)이 하나가 되는 세계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善)도 악(惡)도 없는’ ‘부레옥잠 경(經)’이 되는 세계에서 ‘백제를 온통 끌어안고 사는 백제인, 그가 곧 진동규 시인이 아닌가 한다. (이언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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