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매화향기 500년
퇴계 이황의 매화향기 500년
  • 이흥재
  • 승인 2016.04.03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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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권 지폐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 초상 왼편에 매화가 있다. 아마 활짝 핀 매화가 그려져 있는 줄을 아는 분들이 별로 많지 않을 듯하다. 퇴계선생은 평생을 매화와 함께 살면서 107편의 매화시를 썼고, 매화시만 모아서 매화시첩을 발간하기도 했다. 평소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으로 부르며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으며, 1570년 12월 8일 유시에 70세로 세상을 떠나시는 날 마지막 말씀이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였다고 한다.

  우리들 중에 이황 선생을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로만 알고 있지, 이런 매화 마니아로 멋지고 낭만적인 분으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선비정신의 꽃 매화를 이처럼 사랑했던 퇴계선생이기에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조선 최고의 유학자로 꼽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2주전 도산서원 뜰에 매화향이 그윽할 즈음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의 1박2일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맨 먼저 퇴계 선생님이 사셨던 종택을 찾았다. 퇴계의 16대 종손으로 85세의 이근필 옹이 정갈한 한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앉아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셨다. 인천에서 교편을 잡았던 3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종택에서 퇴계선생의 후손으로 소임을 묵묵히 다하고 계셨다. 종손께서는 도산서원에서 나온 매실로 만든 차를 내주며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셨고, 말씀을 듣고 나올 때 종택 솟을대문에 서서 13명 일행 모두에게 일일이 따뜻한 손으로 악수하며 배웅을 해주셨다. 어른이 종택을 지키시고 계시는 모습이 마치 퇴계선생을 직접 뵙고 온 듯 잔잔한 감동이 가슴에 다가왔다.

  퇴계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있는 노송가 종택도 종손이 직접 안내하며 설명을 해주셨다. 노송가 종택은 퇴계선생의 할아버지가 사셨던 집으로 퇴계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퇴계선생이 태어난 방이 500여년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게 신기하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자 구조의 좁은 마당 한 중앙에 있는 방 한 칸의 누마루 구조도 아주 특별한 건축 구조였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보존되어 왔을까? 바로 가문의 전통을 잇고자 하는 후손들의 정신 즉 사명감이 아니었을까 한다.

  퇴계 선생 묘소 아래에 며느리 봉화 금씨 묘가 있다. 이황선생은 처복이 없으신 것 같다. 21세에 맞이한 부인은 27세에 사별하고 30세에 재취한 안동 권씨 부인 또한 46세에 사별하게 된다. 그래서 늙은 만년에는 봉화 현감으로 있던 아들 준(寯)의 부인 봉화 금씨가 시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고, 퇴계 또한 그 며느리를 친딸처럼 아꼈다고 한다. 며느리 봉화 금씨는 자신이 죽으면 “시아버지 무덤 옆에 묻어 달라. 죽어서라도 정성껏 모시고 싶다.”고 유언을 했고, 퇴계의 손자 안도(安道)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할아버지 무덤아래 어머니의 묘를 모셨다고 한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맞고 계신 김병일 원장은 한류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 스며있는 고급 콘텐츠 발굴이 절실한데, 그것은 바로 “자기희생, 남을 배려하는 인간존중의 선비정신”이라고 역설하셨다. 전직 장관 출신인 김병일 원장은 우선 세련되고 우아한 한복차림의 포스가 남달랐고, ‘태양의 후예’란 드라마가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의리와 정의인데 바로 그게 조선 성리학의 선비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퇴계선생은 도산서원 절우사에 매화가 만발하면, 달이 떠서 질때까지 밤새 매화와 함께하셨다. 밤 이 너무 추울 땐 매화등이란 의자 밑에 숯불을 피우고 매화 감상을 하셨다. 매화등은 매화가 새겨진 등받이가 없는, 청자로 만든 의자이다. 그 청자 매화등을 도산서원 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이 매화등에 앉아 퇴계선생과 함께 매화삼매경에 푹 빠져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종택의 85세 종손의 겸손하면서 반듯한 모습, 퇴계 태실을 500여년간 보존해온 가문의 정신 등은 모두가 퇴계선생이 마지막 날까지 극진히 사랑했던 매화의 향기가 아닌가 한다.

  우리 집안에도 그런 종손어른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지역 종가에도 500년 푹 익은 종손이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 어른의 향기를 맡고 싶다.

 이흥재<무성서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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