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 나영주
  • 승인 2016.03.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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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변호사의 삶을 다룬 미국드라마 <배터 콜 사울>에서 전직 경찰 마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착한 범죄자도 나쁜 경찰도 봐왔소. 나쁜 신부도 정의로운 도둑도. 당신이 법적으로 어떤 판단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남들과 거래를 할 때는 약속을 꼭 지키시오.” 죄와 벌,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드라마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한 대사지만 특히 ‘약속을 지켜라’라는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한편, 민법에도 약속의 중요성에 대한 금언이 있다. 라틴어로 ‘pacta sunt servanda’라는 대원칙이 그것인데,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대등한 사인(私人) 사이의 거래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서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분쟁이 발생한다. 그 약속이 불공정한 입장에서 맺어졌다든지, 사기나 협박에 의해 체결되었다든지 하는 문제는 차후의 것이고 우선은 지켜져야 한다.

 사회학적으로도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들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공동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이 이들 국가에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시민간 협력과 사회적 거래를 촉진시키는 무형의 신뢰와 자산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가 불필요한 비용을 감소시켜 공동체를 발전시킨다는 의미다.

 2015년 실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우리 사회의 각종 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13개 기관과 단체 중 입법부인 국회의 경우, 신뢰한다는 응답이 17.4%에 그쳐 최하위를 기록했다. 입법부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조율하는 갈등의 해소기관임에도 오히려 갈등을 증폭하는 기관이 된 것이다. 더구나 민주주의 근간으로서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에게 저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방증한다.

 사회적 자본은 고사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관마저도 신뢰를 상실한 상황에서 다가오는 4. 13. 국회의원 총선거의 의미는 매우 크다. 공약과 정책이 실종되고 정쟁과 권력투쟁의 모습만 보여준 각 당의 공천과정은 유권자에게 실망으로 다가온다.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사회 불평등 해소와 경제위기극복, 청년실업, 복지와 관련된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차별성과 현실성이 떨어져 급조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주인인 국민의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는 제도이다. 나아가 유권자는 당선된 후보의 약속이 당선 이후에도 얼마나 지켜졌는지 감시할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서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해야 한다. ‘한 표’를 지불한 유권자와의 거래를 가벼이 여기는 대리인은 범죄자보다 나쁘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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