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를 줍던 아이들
삐라를 줍던 아이들
  • 심형수
  • 승인 2016.03.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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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에도 가끔 삐라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아마 지난겨울 북서풍을 이용하여 북한 측에서 날려 보낸 삐라라 생각된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정부에서 일반국민들에게 알릴 사항이 있으면 군용비행기로 삐라를 뿌리는 일이 있었다. 새까맣게 높은 하늘에 뜬 비행기에서 뿌린 삐라가 은빛 색깔로 반짝이며 땅을 향해 내려올 때 느꼈던 감동이란? 들판을 달려 주은 삐라로 딱지도 접고 삐라를 많이 주웠거나 뭉텅이를 확보한 아이들은 연습장으로 묶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 시절 삐라를 줍던 아이들이 오늘날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를 거쳐 디지털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서구사회에서 200년이 넘게 걸린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50년 내에 펼쳐진 것이다. 오늘날 60이 넘은 사람들은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은 세월을 고스란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 멋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최고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환경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이제는 더 이상 받을 필요 없이 노년을 편안하게 즐기며 살다 가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은 데 문제가 있다.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국가중 최고의 수준이며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16.3%로 최하위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인 2명중 1명은 빈곤에 시달리며 공적연금이 노후생활비의 6분의 1밖에 충당해 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기 수치가 계속 악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는 정치로부터 나와야 할 터인 데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복잡한 정치 이야기나 종교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앞서 말한 대로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는 자세의 일환이다.

 정치나 종교에 대한 관점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형성된 신념체계에 바탕을 두고 있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며 자칫하면 친구들 간의 우의를 상하게 한다. 역사적으로도 정치와 종교 때문에 벌어진 전쟁과 살상된 인명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종교에는 얽힌 사연과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노화되는 인간의 뇌용량으로 수용하기에는 벅찬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날엔 티브이 채널의 다양화와 각종 신문 및 SNS (Social Network Service) 까지 가세하여 공급되는 정보의 양도 엄청날 뿐더러 그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다.

 이중에서도 우리 삐라세대의 사람들이 정치 관련 정보 소스로 주로 의존하고 있는 주류 언론이나 지상파 티브이 및 종편방송은 자본 및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교묘하게 정보를 왜곡하고 의식을 둔화시킨다. 그만큼 제대로 된 정보를 식별해 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정보의 취사선택이 달라져 요즈음처럼 복잡해진 사회에서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지 않나 싶다. 조지 오웰이 정보의 조작과 진실의 은폐를 독재의 수단으로 지적한 데 반하여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는 넘치는 정보와 무의미한 소식에 진실이 파묻혀 독재가 가능해질 것을 경고했다 하는 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방식이 어우러져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곧 국민의 대표를 뽑는 20대 총선일이 다가온다.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자던 우리 삐라세대의 노인들도 누구보다 앞장서 투표장에 갈 것이다. 그러나 투표장으로 향하기 전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사항은 점검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첫째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자신들의 미래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녀나 손자들의 의견을 들어 볼 일이다. 나이 든 어른들은 항상 젊은이들이 부족해 보이고 미덥지 못하겠지만 요즈음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우리보다 다양한 대안언론에 접하고 있어 세상 돌아가는 실상을 훨씬 잘 파악하고 있다.

 둘째 기억력 대신 발달한 노인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누가 거짓말을 더 잘하는 정당에 소속된 후보인지를 꿰뚫어 볼 일이다. 사실 통찰력이라 할 것까지도 없이 선거공약의 실현가능성과 소속정당의 과거 선거공약 이행 실태만 살펴보아도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다가오는 20대 총선에서는 제발 정치인들 모두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적 자세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후보를 뽑아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며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보다 희망을 가지고 밝게 살아나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일이다.

 심형수<전라북도 서울장학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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