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든 무는 못 쓴다
바람 든 무는 못 쓴다
  • 이문수
  • 승인 2016.03.27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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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까지 흔들고 있다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멋있는 액션과 감칠맛 나면서 더러는 니글니글한 대사로 알콩달콩 연애하는 송송커플. 송혜교와 송중기는 참 예쁘고 멋지다. 그래서 많은 주부가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남편이 집에 늦게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한다. 옆에 오징어(?)가 있으면 드라마에 몰입을 못 하고 분위기 망치니까. 은근히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은 진지하고 냉정하게 거울을 들여다봐라. 꼴뚜기(?)가 보일 확률이 높다. (하하)

 송송커플처럼 선남선녀의 외모는 갖추지 못했지만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천박한 소비자본주의가 뼛속까지 스며 있는 사회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이 땅의 청년미술가들이다. 그림으로 날이 새고 그림으로 날이 저무는 그 고독한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이고, 전시장의 할로겐 불빛 아래 그림을 걸어 놓으면 마냥 행복한 청년미술가. 그렇다고 이슬만 먹고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매혹적인 창조와 허탈한 배고픔이 동전 양면처럼 하나로 붙어 있는 현실의 딱지를 떼어 버리고 싶지만, 예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난제다. “나는 돈에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청년미술가를 본 적도 없지만, 설사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지금은 미술대학원에 다니는 첫 아이를 낳을 때 일이다. J 병원에서 보호자 직업란에 ‘화가’라고 썼더니, 이것 말고 돈 버는 것을 기록하라기에 순간 자존심이 상해서 “이걸로 밥 먹고 살아요!”라고 했던 적이 있다. 화가는 현대사회에서 수없이 생몰(生歿) 하는 직업군에 비하면 미술계라는 견고한 제도적 장치 속에서 공인된 자격증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고색창연하지만, 돈으로만 잣대질하면 무력하다. 오늘날 화가라는 존재는 자신이 가지는 야심에 찬 미학적 전망에도, 지나간 시대를 반추하며 연명하는 골동품처럼 보인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은 인류 감성의 꽃과 열매로 살아 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모든 예술의 목적.”이라고 헤르만 헤세도 말했다.

 그래서 미술가도 항상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원하는 게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꾸려가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미술가의 일은 매일매일 생각하고 뭔가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그것을 미술로 표현하는 삶의 방식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것이 제대로 잡히면 그때부터 폼이 난다. 하지만 멋진 폼을 가지려면 남모르는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면 겉멋만 들어서 바람 든 무처럼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멋진 폼은 갖고 싶지만 따기 쉬운 별은 아니다.

 예술가를 정의하는 첫 번째 요소는 분명한 자기 개념, 즉 자신이 예술가라고 느끼고, “예술을 직업이 아니라 활동으로, 관심사로, 삶의 방식으로 간주해야 한다.” 직업이란 배울 수 있지만,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을 발명하는 것, 일종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칭하기도 했다는 도연명(陶淵明)은 경이로운 혜안과 통찰력으로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라 했다. 대개 아름다운 꽃 노래를 부르면서 봄을 예찬하지만, 그는 꽃을 피우게 하는 물이 사방에 가득한 것을 봄이라 했다. 봄이 왔다고 만물이 저절로 소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파 서린 동토에서도 뿌리를 준비한 나무에서만 움틀 자격이 있다. 그리고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서 어루만져 줘야 비로소 싹이 난다.

 너무 맑아서 불온한 시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광웅 선생은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한다고 했다. 진정한 청년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어 볼 의지가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봐라. 그리고 낡은 습속을 버리고, 세속에 아첨하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 살아 있는 진정한 청년으로 진화해 보자. 어차피 이 땅에서 청년미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꾸는 질펀한 한바탕 꿈이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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