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그룹형지(주)의 최병오 회장 “꿈을 크게 갖고 강력히 실행하세요”
패션그룹형지(주)의 최병오 회장 “꿈을 크게 갖고 강력히 실행하세요”
  • 박기홍 기자
  • 승인 2016.03.2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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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저녁 7시 전북도민일보 6층 대강당에서 열린 '비전창조 아카데미'에서 패션그룹형지(주)의 최병오 회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신상기 기자

 일근천하 무난사(一勤天下 無難事).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면 세상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동대문 한 평의 가게로 시작해 30여 년 만에 매출 1조원대 굴지의 패션그룹형지(주)를 일군 최병오 회장이 평생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최 회장이 24일 오후 7시 전북도민일보 6층 대강당에서 열린 ‘비전창조 아카데미’에 참석,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의 강연에 나섰다. 원우 80여 명이 대거 참석한 이날, 그는 10대에 장사를 처음 시작한 이야기부터 20대 제과점을 운영한 사연, 동대문 1평 가게 스토리 등 삶의 고비고비마다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오뚝이 인생’을 약 90분가량 들려줘 큰 박수를 받았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벽은 불굴의 의지로 넘을 수 있습니다. 헝그리 정신, 그리고 도전과 창조를 멈추지 마세요. 꿈을 크게 갖고 강력하게 실행해 나가면 어느새 꿈은 현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의 삶은 차라리 한편의 눈물겨운 드라마다. 부산이 고향인 최 회장은 어린 시절에 횟가루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혹독한 가난과 쓰디쓴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가세가 기울며 최 회장은 고등학교도 1차 2차 다 떨어지고 줄만 서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기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좌절, 기술학교를 나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청년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게 된다. 이때 외삼촌의 권유로 부산 국제시장에서 첫 장사를 배우게 된다. 18세 꽃다운 나이였다.

 “부산은 산등성이에 공장들이 많았습니다. 배는 고프고, 힘겹게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눈물이 끊이지 않았지요. 페인트 장사를 하며 두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머리가 나쁠지라도 열심히 살겠노라, 꿈을 크게 갖고 반드시 험한 세상의 주인공이 되리라, 이렇게 매일 각오를 다졌습니다.”

 최 회장은 이 과정에서 브랜드 사업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된다. 사업을 하면서 제품에 브랜드가 있느냐, 없느냐가 부가가치를 좌우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실행하는 역발상, 동대문 옷장사를 할 때도 남과 다르게 하려고 항상 새롭게 고민하고 노력했다.

 “남보다 반의 반걸음만 앞서가려고 했어요. 철저히 준비하면 이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매일 3시 반에 일어나 4시 통금해제가 풀리면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는 더 부지런하고 더 열심히 사는 것이 남보다 반의 반걸음 앞서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동대문 시장 1평 매장의 패션신화는 이렇게 ‘반의 반걸음’에서 시작된 셈이다. 여기서 잠깐. 강연이 무르익을 무렵, 최 회장은 인생의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인내(忍耐)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청년 시절에 권투를 배웠다. 끼니를 걱정할 때 그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3분 3회전을 뛸 때마다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마다 코치가 외친 한마디, “야 임마, 조금만 더 참아!”, 이 소리가 평생 가슴 속에서 큰 힘을 줬다.

 옷장사를 하기 전의 제과점 운영 이야기도 원우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빵집을 인수하게 됐는데, 주변엔 대형 제과점들이 널려 있었지요. 그래서 뭔가 새롭게 해야 하겠구나, 생각하고 식빵을 하루 3번씩 구워서 고객들이 따끈따끈한 식빵을 사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팥빙수를 팔 때 학생들에게 팥을 밥그릇에 듬뿍 담아 더 주면 학생들이 좋아했어요. 저희 집만 그렇게 팥을 더 줬거든요. 그랬더니 매출이 쑥쑥 올라겠습니다.”

 최 회장은 가난했기에, 머리가 나빴기에, 더 노력했고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게 되었다고 했다. 청년기에 결심했던, “60세 환갑을 넘겨 남과 다르게 살려면 지금 열심히 일하겠다며 골프도 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패션업계 CEO로 우뚝 서기까지는 매순간 위기가 닥쳤지만 절대 좌절하지 않았다. 회사명을 ‘불처럼 일어나라’는 뜻의 ‘형지(熒址)’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 회장은 ‘위기를 극복하는 기업가 정신’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강조했다. 그는 “대리점 사장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자신의 사업을 잘 꾸려가는 일”이라며 “먼저 배려하면 2~3배가 되돌아온다”고 강조했다.

 “배려의 정신은 어릴 때부터 장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항상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남에게 고개를 더 숙였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다가왔지요. 남을 도와야 남도 나를 도와주지요. 지금도 저는 인사를 90도로 깊숙이 숙여 합니다.”.

 패션그룹형지가 국내 관련업계 5위권의 중견업체로 우뚝 선 배경엔 최 회장의 사업 차별화도 한몫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중장년층 의류인 ‘엄마 옷’ 시장에 주목한 그는 “중장년인 3050 여성들의 옷에 대한 스트레스를 없애자는 신념으로 1996년 크로커다일 레이디를 론칭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타 마케팅을 도입한 것도 최 회장이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지난 2007년 국내 단일 브랜드 최초로 매출 3천억원을 넘긴 쾌거도 그가 아니면 힘들었다. 덕분에 형지의 매출은 지난해 1조900억원을 기록했다. 최 회장은 “사업이 잘된다고 욕심을 내면 안 된다”며 “오는 2020년까지 당초 매출 5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지금은 3조원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 살얼음판을 걷는 위기도 만났지요. 부도도 났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렬한 의지,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벽이 허물어지고 위기가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하하하!”

 ‘패션을 통해 행복을 나눈다’는 철학, 사회를 밝히는 희망전도사로 유명한 최 회장, 맨손으로 시작하여 국내 굴지의 종합패션 유통기업을 키워낸 생생한 스토리는 강연장의 큰 울림으로 퍼졌다.

 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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