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경제]<9> 지원기관 협업 내실화
[전북경제]<9> 지원기관 협업 내실화
  • 박기홍 기자
  • 승인 2016.03.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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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부가 북한 개성공단 전면가동 중단을 발표했던 지난 2월 12일.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정원탁 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은 관련기업들의 피해 실태조사가 가장 시급함을 동물적 직감으로 느끼게 됐다.

곧바로 직원을 부른 정 청장은 “내일부터 주말이지만 전 직원을 동원해 피해 기업의 실태를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워낙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터라 전북청 전 직원들은 고스란히 주말을 반납해야 했다. 보고서가 나온 때는 이틀 뒤인 14일 밤 9시께. 일요일이었지만 전북청 간부들이 야심한 밤에 다시 간부회의를 시작했다.

“피해기업을 찾아가니 ‘제발 창구를 단일화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갑작스런 사태에 기업들은 경황이 없는데, 여기저기서 연락해와 이것저것 답변하다 보면 울화가 치민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장 피해기업 지원 단일창구를 만들어야죠. 내일 아침에 기업 지원 기관장 회의를 하고 단일창구 협력에 나서면 어떨까요?”

“어떻게 갑자기 회의를 한다고 참석을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좀….”

“사안이 급하니 그렇게 합시다.”

정 청장은 이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수화기를 붙들고 14개 기관의 장(長)에게 전화를 걸어 긴급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기관장들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모 기관장은 취임식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요한 사안인데, 빠질 수 있겠느냐”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2월 15일 월요일 아침 9시, 전북중기청 회의실에는 10여 명의 중소기업 지원 기관장들이 모였다. 100% 참석이었다. 피해기업 지원을 위한 단일창구 마련과 신속한 지원은 불문가지(不問可知), 피해기업 1개사당 과장급으로 된 담당제를 적용, 전국 최초로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사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긴급 사안에 대해 전북 지원기관들이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총력지원에 나선 대표적인 사례다.

#2: 지난 16일 오전 10시 전북중소기업청 회의실. “전북 수출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내수기반이 취약한 전북은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갈수록 어려운 실정입니다.” 길고 긴 한숨이 창밖으로 흘러나왔다.

수출 절벽에 부딪힌 현실은 정말 심각했다. 한국무역협회 전북본부 조사 결과 전북수출은 지난해 연간 79억5천만달러에 만족, 전년대비 무려 7.1%나 급감했다. 총액도 그렇지만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더욱 심각했다.

전북의 10대 주요 수출품목별 실적을 보니 선박·해양 구조물과 부품만 전년대비 급피치를 올렸을 뿐 자동차와 정밀화학 원료, 합성수지 등 나머지 9개 품목은 최고 42%까지 곤두박질 쳤다. 전북의 대표주자들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이날 회의실에는 전주세관(세관장 박용덕)과 무역협회 전북본부(본부장 김영준), 전북코트라지원단(단장 신덕수), 전북중소기업청(청장 정원탁) 등 4개 기관이 모여 수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전주세관은 FTA·통관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무역협회는 전문 인력 양성 부문에서, 코트라는 해외 인프라 정보 제공 등을 위해, 중기청은 해외 마케팅 지원에 각자 총력을 기울이자는 의기투합에 나섰다.

이날 MOU 체결에는 전주세관이 합류, 변화하는 세관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박용덕 전주세관장은 관내 대중국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대 1 맞춤형 무료 컨설팅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주세관의 박찬근 팀장은 “자체 인력이 부족하지만 수출 활성화라는 대명제를 놓고 지원기관들이 협업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전북 무역업계의 K 사장(47)은 “세관까지 적극 나서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협약하는 모습은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풍경”이라며 “현실은 어렵고 팍팍하지만 힘이 난다”고 말했다.

#3: 두 장면은 전북 중소기업 지원기관들의 협업(協業)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풍경화의 제목은 ‘함께 하면 더 큰 지원이 가능하다’

전북의 중소기업 지원기관은 정책과 무역, 기술지원, 자금, 판로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여 개에 이른다. 이들 기관은 전문성을 갖추고 해당 분야에서 기업들의 경영 애로를 지원하고 있어 원스톱 서비스 차원의 일괄 지원, 이른바 협업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시제품 제작 기관 간 상호 협력체계 구축은 이런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전북도와 전북중기청, 전북경제통상진흥원 등 도내 21개 기관이 작년 말에 협약을 맺고, 각자의 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연계협력 체계를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각자가 가진 시설과 장비 등을 ‘따로국밥’식으로 굴리지 않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가동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중소기업인 H씨는 “지원정책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천국이 맞다”며 “하지만 정책이 실질적으로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효율성 저하와 신속성 추락 등 여러 부작용이 생겨나고, 결국 정책에 대한 극도의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의 소상공인 L씨도 “지원기관이 너무 많아서 기대치가 큰 데 막상 지원받으려 하면 각자 여러 조건을 내세우는 등 기댈 곳이 없다”며 “지원기관들이 각자의 노하우와 자원을 공유하고 중소기업을 위해 연계 지원하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원기관들이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고 오직 기업 지원만을 위한 협력시스템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며 “전북도와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자금과 인력 등 다양한 경영 애로를 일괄적으로 풀어, 기업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지원기관들이 앞장 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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