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의 세상읽기] <6>한 알의 사과
[정성수의 세상읽기] <6>한 알의 사과
  • 정성수
  • 승인 2016.03.15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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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위의 사과는 빛이 났다. 사과는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하다. 내일이면 준희가 며칠 전에 다툰 영지에게 사과를 하려 간다. 친구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 사과는 지난 봄 화사한 얼굴로 상춘객들에게 기쁨을 주던 사과꽃이었다. 사과꽃은 여름이 되자 땡볕 속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옹골차게 익어갔다. 찬란한 가을빛을 온몸에 받더니 한 알의 사과가 되었다. 상큼하게 익은 사과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도 사과에게 미소를 보냈다. 가을바람이 사과나무를 어루만지고 갔다. 사과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했다.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이 궁금했고 소가 끌고 가는 달구지가 궁금했다.

  그때였다. 과수원 주인이 다가왔다. 과수원 주인은 사과나무를 요리저리 살펴보더니 사과를 따기 시작했다. 사과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사과나무가 사과에게 조용히 말했다.

 “사과야, 너는 이제 떠나야 한다. 세상에 나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사과나무의 말을 들은 사과는 슬퍼지기 시작했다. 넓은 세상이 늘 궁금했지만 막상 사과나무의 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사과는 덜컹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시장으로 갔다. 시장에는 많은 과일들이 나와 자기를 데리고 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과도 진열대에 다소곳이 앉아서 주인을 기다렸다. 이때 옆에 있던 밤이 말을 걸어 왔다.

 “너는 어디서 왔니? 나는 산에서 왔는데”

 밤은 산비탈 바위틈에서 다른 나무들과 자리다툼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바람에 팔이 꺾여도 아픔을 참아야 했다. 늘 목이 말랐지만 누구하나 물을 주지 않아서 힘들게 살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과는 여기 오기까지 행복했다는 것을 알았다. 과수원 주인은 이른 봄이면 가지치기를 해 주고 거름을 주었다. 장마에는 도랑을 만들어 사과나무가 고슬고슬한 땅에서 살 수 있었다. 가뭄이 들면 물을 주기도 했다. 가을에는 까치들이 덤벼들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 주었다. 밤에 비하면 너무 호강을 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준희가 엄마와 함께 과일가게 앞에 섰다. 준희가 말했다.

 “엄마! 저 사과가 좋겠어”

 준희의 눈은 가을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사과는 다른 사과들과 함께 비닐봉지에 담겨졌다. 비닐봉지 속은 캄캄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비닐봉지 속은 너무 비좁아서 사과들은 서로 몸을 붙여야 했다. 사과들은 불평을 하지 않았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희는 세상을 바꾼 3개의 사과를 생각하면 사과를 닦기 시작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있던 이브의 사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와 스티브 잡스의 사과였다. 사과는 닦을수록 빛이 났다. 내일이면 영지를 만나 미안했다고 사과하려는 준희의 마음을 안 사과는 비로소 사과나무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세상을 바꾼 사과보다 더 아름다운 사과는 사과를 하러 가는 한 알의 사과였다.

정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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