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音)가 들리는가요?
봄이 오는 소리(音)가 들리는가요?
  • 황의영
  • 승인 2016.03.14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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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칩(驚蟄)인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왔다. 선조 산소를 찾아 성묘를 드리고 산에도 올랐다. 응달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다. 눈 녹은 물이 골짜기 도랑에서 졸졸졸 소리를 내어 흘러내린다. 버들강아지 겨우내 잠자던 눈을 비비고 배시시 꽃눈을 드러낸다. 진달래도 봄을 재촉하는 비에 젖어 꽃망울이 한껏 부풀어 올라 곧 터질 것만 같다. 양지바른 산자락에는 군락을 이룬 쑥이 수즙은 듯 살며시 여린 잎을 드러내고 어서 봄이 오기를 재촉하고 있다. 산골 고래실논의 물웅덩이에는 개구리가 알을 쓰러 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봄이 내 발밑에 와 있었다.  

 누구는 봄이 소리(音)로 온다고 하고 또 누구는 봄은 빛(色)으로 온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봄이 향기(香)로 온다고도 한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왈츠의 왕’ 요한슈트라우스 2세(1825~1899)는 봄이 오는 소리를 오선지에 그려내 뭇사람들의 가슴속에 봄이 오는 소리를 아름다운 선율로 전하며 감동을 주고 있다. 산골짜기 도랑에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소리가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지지배배 봄이 왔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산에는 잎새를 떨군 나무들이 물이 오르면서 희뿌연 안개 빛으로 변하다가 노르스름한 연초록색으로 변하면서 봄의 농도를 채색해 준다. 제주도에서 노란 유채꽃이 섬진강변의 연분홍 매화꽃이 지리산 자락에서 샛노란 산수유 꽃이 봄이 왔음을 시간대별로 알려준다. 매화꽃의 향기가 코끝으로 봄을 느끼게 한다. 달래와 냉이가 들어간 된장국을 먹으며 식탁에서 봄이 왔음을 코끝으로 느낀다. 저 멀리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산비탈의 진달래꽃이 담벼락 아래의 개나리꽃이 피면서 봄이 왔음을 알려줄 것이다. 봄이 오면 농부들도 씨앗을 뿌리고 풍성한 가을 추수를 꿈꾸며 행복해 한다. 봄이 오면 모든 곤충이나 짐승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해 짝짓기를 하는 등 생명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할 것이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생명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봄을 만끽하면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고향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농부들은 쟁기를 꺼내 보습을 갈고 부러진 써렛발을 바꿔 끼우는 등 농기구를 손보며 농사를 준비했다. 외양간에서 겨우내 만들어낸 두엄을 논밭에 낸다. 청명과 곡우사이에 볍씨를 담그고 서리 내리는 것이 끝나기를 기다려 부엌 나뭇가리 밑에 묻어두었던 씨감자를 캐내어 씨눈이 들어 있도록 삐져내 재에 버무린 뒤 밭에 내다 심는다. 서릿발에 떠밀려 올라 허공에 뜬 뿌리를 다시 흙속에 묻기 위해 보리밭을 밟는다. 얼지 말라고 겨우내 땅속 깊이 구덩이를 파고 묻어 두었던 무를 무구덩이를 파헤쳐 꺼내어 무밥·무김치·깍두기·무생채 등을 해서 먹으며 식량을 절약하고 미각을 돋우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의 농촌은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가을에 추수가 끝난 논에는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고 딸기며 오이, 토마토, 수박, 시금치, 쑥갓, 배추, 무가 심어져 싹을 틔우고 계절을 잊고 잎과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이를 키운다. 땅이 꽁꽁 얼어붙고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인데도 딸기·토마토·오이·시금치·쑥갓·무·배추가 수확돼 도시민의 식탁에 올라 미각을 자극하고 일본과 동남아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봄에 시작하던 농사가 이제는 사시사철 시작하는 농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옛날에는 절대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농업이 이제는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의 제약을 뛰어 넘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제 철 과일이나 채소라고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계절의 한계를 넘어 생산되고 있다. 농한기라는 말이 사라지고 겨울에도 농사일에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들이 많아졌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많이 든다. 

 그러나 산골 농촌에는 아직도 비닐하우스가 드물고 많은 농가에서는 봄에 곡식과 채소를 심고 가을에 거두어드리는 과거와 같은 미작 중심의 농사를 짓고 있다. 칠·팔십대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젊은 사람은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십년 후 이십년 후 우리 농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 고향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나면 농촌 마을에 몇 사람이나 살고 있을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귀향하는, 귀농하는 젊은이들을 충분하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 농촌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농업이 아무리 천덕꾸러기 애물단지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이상 나 몰라라 내팽개쳐 버릴 수만은 없다. 식량은 생명을 담보해주는 가장 확실하고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금년 봄에는 우리 농민들이 어려워 힘들다는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줘 얼굴가득 미소 짓게 하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황의영<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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