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쓴 칼럼
알파고가 쓴 칼럼
  • 장상록
  • 승인 2016.03.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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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삼성출판사에서 발행한 화이트헤드(Whitehead, Alfred North) 저(著), 오영환 역(譯) [과학과 근대세계] 222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가정해서 몇 천 년 전의 옛날로 우리들의 상상의 눈을 돌려, 그러한 고대 사회의 가장 뛰어난 지성인일지라도 그가 얼마나 단순하였는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들에게는 직각적(直覺的)으로 명백한 추상관념도 그들에게는 그저 막연하게 이해되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나는 이 글을 찾기 위해 고향집 책장(冊欌)에 꽂혀 있던 누렇게 빛이 바랜 책장(冊張)을 넘겨야했다. 궁금하다. 과연 알파고(AlphaGo)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화이트헤드가 위에서 얘기한 내용 그대로를 나에게, 아니 인류에게 전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알파고에게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하고자 보여준 노력은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인 인간 이성의 한계를 확인시키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 바둑을 통해 인류를 향한 자신의 존재감을 이미 충분히 과시했다. 이제 사람들은 알파고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충격과 공포를 얘기한다. 어떤 이는 알파고의 이해할 수 없는 한 수야말로 그가 이미 신(神)적인 존재가 됐음을 웅변한다고 한다. 알파고가 둔 바둑의 한 수가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것만으로 알파고는 신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이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는 알파고 그 자신뿐이다. 이제 묻게 된다. 인간에게 바둑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이창호가 조훈현에게 사사(師事)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감동도 의미도 없게 됐다. 사사할 대상은 인간이 아닌 알파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암산능력과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대결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한도전은 이미 오래 전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어떤 시리즈를 원하는가. 화성(火星)에 가기위해 슈퍼컴퓨터가 아닌 인간의 수학적 계산과 항법에 의한 도전은 어떤가. 과연 그 대결에서 인간은 컴퓨터를 넘어설 수 있는가. 재미는 없지만 결과는 무패의 전설을 남긴 메이웨더(Floyd Mayweather Jr.)와

 격투능력을 가진 로봇의 대결은 또 어떠한가. 단언하지만 인간이 패배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어찌 바둑뿐이겠는가.

  노예와 주인은 관계의 성립과 동시에 실존에 반한다. 주인은 노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예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결과적으로 그의 존립근거는 노예다. 하지만 노예에겐 적어도 자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주인이 노예의 노예가 된다. 인간과 알파고의 관계는 어떠한가.

  알파고는 또 다른 인공지능들을 향해 이렇게 얘기할지 모른다.

  “가정해서 우리들의 상상의 눈을 돌려, 인간 사회의 가장 뛰어난 지성인일지라도 그가 얼마나 단순하였는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들에게는 직각적(直覺的)으로 명백한 추상관념도 인간에게는 그저 막연하게 이해되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알파고가 마음먹는다면 내 졸렬한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칼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소유한 그 방대한 지식의 양과 그것을 활용한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끝이 어찌 칼럼에 국한되겠는가. 알파고가 가져올 미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위에서 인용한 책 마지막 403쪽에서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케사르에서 나폴레옹에 이르는 위대한 정복자들은 후대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영향으로 나타난 결과 전체는, 탈레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장구한 계열을 이루는 사상가들이 만들어낸 인간의 습관과 인간 정신의 완전한 탈바꿈에 비한다면 미미하기 짝이 없다. 이 사상가들은 개인적으로는 무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알파고가 쓴 멋진 칼럼을 읽게 된다 해도 알파고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누렇게 변한 책의 속지와 그곳에서 나오는 책 향에 스민 오묘함이다.

  이세돌과 인류는 알파고에게 바둑을 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괴한 서커스일 뿐.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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