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실종 총선과 민주주의의 침식
정책실종 총선과 민주주의의 침식
  • 최낙관
  • 승인 2016.03.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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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3 총선이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은 내홍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고 이를 바라보는 유권자와 시민사회는 구태를 반복하는 작금의 상황에 정치적 무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총선인지 그리고 이 선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진일보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인지 그저 모든 것이 안갯속처럼 불투명한 현실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우선 우여곡절 끝에 봉합되었던 선거구 획정 이후 정치권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분당과 탈당 그리고 후보자 공천과정이 내홍으로 번지면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시작도 하기 전에 활력을 잃고 있다. 과연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자행되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가 이해 가능한 일인지 유권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정치적 파업이나 태업처럼 비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 유권자가 느끼는 거부감의 근본적인 이유는 정책선거에 대한 기대감이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이 실종된 선거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냉소적인 유권자가 스스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합리적 무시’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의 요소임이 틀림없다. 바꾸어 말하면 선거를 통한 정치와 사회발전은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대의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제도이고, 유권자가 동등한 1인 1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수단을 통해 다수의 득표를 하는 자가 승리하는 게임이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유권자는 1장의 투표권을 가지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아울러 다수결 민주주의의 하에서 유권자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투표권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정당과 정치가는 다수 유권자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정책실종으로 인해 자신의 표를 어느 정당과 누구에게 던질지 모르는 ‘선택의 지옥’이 가시화된다면 그래서 스스로 투표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의도와 상반된 투표를 한다면 정치발전과 제도개혁은 불가능하거나 지연될 뿐이다. 이것이 다수결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의 후퇴는 더 나아가 후보들의 당선만을 고려한 알맹이 없는 헛공약만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해 말까지를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 239명(공석·사고 제외)의 공약 이행실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공약 이행률은 절반 정도인 51.24%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도 경북 지역이 59.56%로 가장 높았지만, 이 또한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설사 이행된 공약이라 하더라도 예컨대 도로를 내거나 공공시설 유치 등 지역 민원성 공약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결국 개별 의원들의 의정활동 보다 중앙 무대에서의 로비력이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소외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전라북도 의원들의 경우는 더욱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나아가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구걸하는 부정적 이미지의 의원으로 낙인찍히는 악순환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선거의 현장에서는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저마다 지역발전은 물론 민생과 복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장은 난무하지만, 증명의 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스스로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정책과 대안을 구체적인 공약으로 만들어 유권자에게 제시해야만 한다. 이제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인해 민주주의가 와해하는 공멸의 길로 들어서는 안 됨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이상 다른 대안이 있는지 정당과 후보자는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한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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