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없는 개혁
호남 없는 개혁
  • 나영주
  • 승인 2016.03.0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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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남대 김욱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 작년부터 인기다. 소문에 의하면 야권 재편의 주요 인사들의 필독서라고 한다. 이 책의 주요 비판 대상은 이른바 ‘영남 패권주의’다. 간단히 말해 ‘영패주의’는 영남인들이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을 차별하고 정치 무대에서 배제함으로써 정치 경제적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관계에 일정부분 호남인들의 ‘자발적’ 동의를 구하는 방식의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지역갈등으로 불리는 호남차별의 저변을 자세히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위 책은 의의가 있다.

 호남정치,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의 주요 모순은 지역모순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 부분에 대하여 문제 인식은 하고 있지만, 단순 구호 수준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에선 지역차별은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호남 정치인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김대중 이후 호남 출신 대통령이 나오기엔 요원하다. ‘1번당’이든 ‘2번당’이든 암묵적으로 호남 정치인을 배제하는 이데올로기가 유령처럼 떠도는 것이다. 주요 공직의 기관장 가운데 호남 특히 전북 출신은 씨가 말랐고,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있다.

 그동안 전북인들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된 선택을 해왔다. ‘2번당’의 대통령 후보는 영남의 일부 표를 빼앗아 오기 위한 전략으로서 영남출신이어야 했다. 김욱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스러운 호남’으로 언제나 민주주의와 서민경제와 같은 숭고한 가치를 추동해야 하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해야만 한 것이다.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기 위해 호남과 충청, 나아가 서울 수도권에서 최대한 득표를 하고, 영남에서 일부 표를 빼앗아오는 전략은 이젠 무용해 보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위 전략에 더하여 돌발적인 이벤트, 시쳇말로 ‘운’이 따라줘 가능했다. 민주정권 이후 2번의 대선은 위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방증한다. 민주개혁세력은 정권을 되찾아오지도 못하면서도 한편으로 제대로 된 야당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에 더하여 야당 내부의 주요 정치결정 과정에서 호남의 배제가 결국 야당의 분열로 이어졌다. 조국 교수는 ‘내가 호남 사람이라도 2번당을 안 찍는다. 돈 대주고, 힘 대주는데 의사결정에선 소외된다고 여긴다면 찍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호남사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야당은 명실상부한 전국정당화를 위해 호남 색깔을 지우려고 애를 쓰고, 야당의 집권을 원하는 민주개혁세력도 이를 불문율처럼 받아들인다.

 나아가 호남의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지역주의적 투표행태로 매도당한다. 영남사람들의 몰표가 아닌 호남인들의 ‘2번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조롱받는다. ‘90% 이상이라니 비정상적이다’라는 말들을 다른 지역사람들로부터 한번 즈음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차별의 희생자가 가해자로 전도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호남의 몰표와 영남의 몰표는 본질적으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지역주의로 묶여 비판받는 현실에 대하여 김욱 교수는 호남인들은 지역적 욕망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항변처럼, ‘1번당’ 중진의 고향 출마는 아무런 비판이 없으면서도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험지 출마’를 강요받는 현실은 정 전 장관 출마의 적절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일견 문제 있어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권하에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서민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있다. 호남 속의 호남인 전북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남 패권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이 또 다른 소지역주의로 귀결될 위험을 경계하면서 호남인들의 세속화된 욕망을 드러낼 방법은 없을까. <아주 낯선 상식>의 부제는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다. 동학농민운동과 광주항쟁,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하에서 의로운 선택을 해왔던 호남인들의 입장에서 개혁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인으로 취급받는 현실은 암담하다. 51%대 49%의 원초적인 한계와 소선거구 단순비례대표제라는 구조적인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호남 정치인의 분발과 호남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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