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의 세상읽기]<4> 대왕고래
[정성수의 세상읽기]<4> 대왕고래
  • 정성수
  • 승인 2016.03.0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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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와 바다를 통떨어 현존하는 가장 큰 포유동물은 바로 대왕고래다. 성체의 길이는 30m에 육박하고 몸무게는 코끼리 25마리 정도다. 심장은 소형차보다 크다. 한 끼 식사로 크릴 500만 마리 정도를 먹는 대식가다. 대왕고래는 남빙양부터 북극해까지 전 세계의 바다에 살며 주로 극지에 나타난다. 남빙양의 고래를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다. 이때부터 이익이 많이 남는 대왕고래만 잡아 이제는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소년은 대왕고래를 찾아 나섰다. 어딘가에 틀림없이 대왕고래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바닷가에 나가 망원경에 눈을 들이대 봐도 대왕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고래 박물관은 물론 고래 축제장에도 대왕고래는 없었다. 유람선 ‘고래 관광 크루즈’를 타고 동해바다를 샅샅이 훑었지만 대왕고래는 고사하고 새끼 고래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년은 바닷가에 주저앉아서 대왕고래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가고 세월이 흘러도 온다는 기별조차 없었다.

  대왕고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다. 대왕고래가 어디론가 숨어버리거나 멀리 가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너무 멀리 온지도 모른다. 오늘도 소년은 고래를 찾아 길을 나선다. 어른들은 들로 산으로 대왕고래를 찾으러 갔다. 금방이라도 찾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어른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대왕고래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다만 대왕고래를 찾으러 가는 길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임금을 높여 우리는 대왕大王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은 ‘남정북벌南征北伐’하여 민족사에서 한 시대를 구획하는 ‘광개토경’이라는 위업을 이룩하였다. 한강 이북으로부터 만주 전역에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확보함으로써 고구려의 기상을 중국 땅에 까지 널리 떨쳤다. 그런가 하면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30대 문무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한다.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이 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는 애국정신은 바로 대왕고래 정신이다. 조선시대 세종의 수많은 업적 중 가장 큰 업적은 한글창제다. 뿐만 아니라 과학 유산인 측우기, 물시계, 해시계, 혼천의를 만들었다. 역사상 최고의 왕인 세종을 우리는 세종대왕이라고 칭송한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대왕고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먼 곳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 고래라는 희망의 이름이 하늘에 떠 있다. 희망은 고래 힘줄 같이 질긴 것이지만 절망보다는 한결 났다. 대왕고래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고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우리들은 마음속에 대왕고래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왕고래는 잡는 것이 아니다. 잡힐 듯 잡힐 듯 오늘에 이르렀지만 대왕고래 한 마리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대왕고래도 뭍이 궁금한지 가끔은 수면 위로 치솟는다. 세상 어디에서도 대왕고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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