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 ‘하나 더’
한계를 넘어 ‘하나 더’
  • 이문수
  • 승인 2016.02.2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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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개월 전부터 ‘헬스클럽’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지금은 ‘휘트니스’라 하고, 어르신들은 ‘육체미 도장’이라고 한다. 흥겨운 음악이 생기를 더해주는 곳. 많은 사람이 걷고 뛰고, 무거운 쇳덩이를 들어 올리고 당기면서 진땀을 뺀다. 흐르는 땀의 무게를 이기면서 몸속 탄내를 맡아야만 한다. 그다음에는 기분 좋은 근육통이 항상 뒤따른다.

 근육은 풍선이 아니므로 한 번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어금니를 꽉 물면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쓰고 나서, ‘하나 더’ 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몸의 외침을 뒤로하고 ‘하나 더’하는 게 중요하다. 숨어 있는 근육은 강하게 자극하고 반복해야만 굵어지고 섬세한 모습을 드러낸다. 고독하고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이 가치 있는 것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전시를 기획하고 구축해 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하나 더’ 해내야만 관람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오는 4월 10일까지 도립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전북미술 모더니티 역사전>이 세간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북미술 모더니티 역사전>은 1940년대 이후, 전북미술 70여 년의 역사를 모더니티의 관점에서 기술한 전시다. 전북미술사를 정립해서 정체성을 확보하고 현재 상황을 짚어 보기 위해서다. 전북미술사를 연구하는 미술사가와 해박한 정보와 경험을 가진 미술평론가에게 논문을 의뢰했고, 그것을 근거로 수차례의 전시자문을 통해서 91명의 120점을 선정했다. 참여 미술가와 작품은 미술사의 주요 전시와 사건들, 시대별 활동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미술사적인 맥락에 따라 ‘근대 여명기’, ‘구상과 추상’, ‘현대미술 확장기’ 부분으로 나누었다.

 선정한 미술가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찾기 위해 공적인 기관에 도움을 청하고, 더러는 사적인 관계를 통해서 유족과 접촉하기도 했다. 담당 학예사와 함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서 작품에 쌓여 있는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기도 하고, 입담 좋은 미술가의 영웅담(?)을 듣는 재미를 맛보기도 했다. 미술가의 작업실은 각기 다른 분위기가 있다. 현장에서 역사적인 작품의 민낯을 보면서 안복을 누린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전북미술 모더니티 역사전>은 도립미술관으로서 지역미술을 연구해서 정체성을 규명하고 있는 중요한 전시다. 하지만 ‘역사’는 모든 사실을 기억하고 기술할 수 없다. 또한,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의도적인 차별이나 배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꼭지를 미처 추스르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부족분도 채우고, 전북미술의 가치와 자긍심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이다. 도립미술관은 세미나를 통해서 감정적인 뒷담이 아닌 건실한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전북미술 모더니티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다.

 전북은 모악산 정기와 너른 평야의 풍요로움이 흥과 멋으로 피어났다. 그래서 예향이라 했다. 백제의 융성한 문화와 기상이 배어 있고 선사문화와 근현대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그 맥이 여전히 흐르고 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강 이남에서 미술사를 운운하면서 전시할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전북미술은 예나 지금이나 층이 두텁지는 않지만 탁월함을 보였고, 현재도 선명한 개성과 다양함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으로 주말에는 1,000여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미술관에 온다. 문화적으로 준비된 도민이 항상 자랑스럽다.

 <전북미술 모더니티 역사전>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나 더’ 들어 올린 전북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과 대면할 수 있다. 전북 근현대미술의 특징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준비된 관람자는 전북미술의 탁월함 속에서 틸틸과 미틸의 ‘파랑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곁에 있는 파랑새를 알아채는 사랑의 시선을 가져보자.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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