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공생의 언어, 우분트와 아로파
나눔과 공생의 언어, 우분트와 아로파
  • 이귀재
  • 승인 2016.02.24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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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실에서 바이러스와 생명체의 세계를 연구하다 보면 개체 하나하나의 행동에 매달릴 때가 많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미세한 개체가 전체적으로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행동하는가를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가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꿀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꿀벌은 개체의 행동보다는 집단으로 바라봐야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꿀벌 집단은 멀리서 보면 전체적으로 거대한 아메바가 춤추듯이 단일 생명처럼 행동한다. 모든 생명체들이 오늘날까지 몇 천 년 동안 종족을 유지했던 까닭도 꿀벌처럼 집단을 위한 헌신과 협동에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어떤 생명체라도 종족의 유지에는 나눔, 신뢰, 봉사, 협동이 최선이었다. 모든 종족에서 개체의 이기적 행동은 사회적 규범이나 일정한 규칙을 통해 제어된다.

항상 선진국의 논문에서 언어와 개념을 차용하여 연구하는데 도움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우리보다도 미개하고, 우리보다도 못산다고 여기는 후진 사회에서 큰 감동의 언어를 봤다.

먼저 평소에 즐겨 사용하고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하는 우분트(Ubunt)라는 용어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어느 인류학자가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 하나를 제안했다. 나무 옆에다 달콤한 딸기가 담긴 바구니를 걸어 놓고 누구든지 먼저 뛰어간 아이에게 모두 다 주겠노라고 했다. 출발이라는 신호가 떨어지자 인류학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과일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서 입안 가득히 과일을 베어 물고서 나눠 먹었다. 인류학자가 이유를 물었다.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느냐?”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우분트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1등을 빼고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는 거죠?” 우분트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65,000km 떨어진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아누타 섬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아로파(Aropa)라는 정신이다. 아로파를 굳이 해석하면 연민, 사랑, 나눔, 협동의 뜻이 담겨 있다. 원래 아누타 섬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하고 서로 죽이다가 마지막으로 남자 4명만 남았다고 한다. 문득 미래의 묵시록처럼 어떤 암시가 떠오른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가 점점 탐욕과 이기심으로 물들면서 서로 자원과 물자를 차지하기 위해 대립하는 오늘의 세계가 그려진다. 어쨌든 아누타 섬은 이후 서로 공존을 위해서는 상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로파를 시작했다. 서로 슬픔과 기쁨도 마을 전체가 함께한다. 바닷가에서 잡은 고기는 마을 사람들의 형편에 따라 똑같이 분배된다. 어려운 사람이나 산모는 아로파 정신에 따라 모두가 돌본다.

아로파 정신을 추적하고 있는 책은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볼로냐까지 소개한다.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해서 함께 일하고 서로 나누는 상생의 협동정신은 볼로냐를 유럽에서 5번째로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성공한 아로파가 유럽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 실험이라 하겠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은 새로운 현상에 대해 개념과 말로 설명하는 작업이다. 말과 언어는 힘을 갖고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가는 무형의 힘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영어권 선진국의 언어로 우리 사회를 해석하고 바꿔보려 하지 않았나? 우분트와 아로파는 나에게 많은 부끄러움과 성찰을 가져다준 정신이며 언어이다.

이귀재<전북대학교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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