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안 도
  • 승인 2016.02.18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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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1989년 가수 김수희 씨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애모’의 한 소절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전북문화의 모습을 담는 게 아닌가 싶어 우울해진다.

  강원도 동해출신 소설가 심상대(52)씨는 중편 소설 ‘단추’로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그가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자신이 2000년 현대문학상 받을 무렵에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동해시는 시청 양쪽 담벼락에 ‘축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과 ‘축 향토 소설가 심상대 현대문학상 수상’이란 똑같은 크기의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주었다고 회상을 했다. 지방자치 단체들이 연고가 있는 문인들에게 얼마나 대우를 해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에 수원시는 연고가 전혀 없는 시인 고은 씨를 ‘영입’했다. 고은 씨는 우리 고장 군산에서 태어나 경기도 안성에서 20년 이상 살았다. 그런데 수원시는 고은 씨를 위해 사택과 집필실은 물론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고은 문학관’을 세워주기로 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군은 황순원 문학촌에 3층짜리 문학관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상영실 등 체험 시설까지 갖춰 놓고 있다고 한다.

  경북 청송군의 객주 문학테마타운은 15만㎡ 부지에 150억원을 들여 영상관, 체험놀이 마당을 만들어 놓았다.

  물론 관광수입 증대에만 너무 치중하거나 특정 작가를 놓고 지자체끼리 다투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예를 들면 토지 작가 박경리씨를 기리는 문학관은 강원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문화관, 경남 하동의 평사리 문학관,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 등 전국에 4개나 있다. 통영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살며 하동을 무대로 한 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씨가 타계한 뒤 원주, 하동, 통영은 경쟁적으로 추모사업에 나섰다. 이에 따라 원주와 통영은 박씨의 유품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우리고장에도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를 기리는 문학관이 출생지인 전주와 ‘혼불’의 무대가 된 남원에 들어섰다. 그러자 60㎞도 안 되는 가까운 지역이라 중복투자와 예산낭비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의 즐거운 비명이다. 국정지표며, 각 지방의 시정지표에 보면 <문화융성>은 언제나 상위에 있다. 그런데 막상 예산 편성 때면 항상 뒤쪽으로 밀린다. 올해도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과 새로 발족한 전북문화관광재단 이병천 이사장이 대폭 삭감된 문화예산 때문에 내쉬는 골 깊은 한숨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하는 말들이 있다. 이는 정치인들의 문화에 쏟은 돈과 유권자의 표심과의 괴리에서 오는 병폐라고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어느 마을에 길을 닦아주거나 양로당을 하나 고쳐주면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들, 딸 사돈네 팔촌까지 모두가 표인데 지방에 도서관을 지어주면 표가 몇 장이나 되겠냐는 것이다. 문화예술인과 택시기사들 가운데 누구를 만나야 표를 얻는데 유리하겠느냐는 것이다.

  문화는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사회통합의 창구로서 효용성을 갖는다. 정치인들의 생색내기로 전락한 문화행사에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문화행정은 주민들의 삶의 질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시도여야 할 것이다. 현재의 지방 문화행정은 이와 같은 청사진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이런 현실에서 문화생산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문화가 우선순위에서는 하락했다 하더라도 문화는 여전히 핵심시책의 하나다. 그런데 그 기저에는 문화를 산업의 한 축으로 혹은 경제성장의 한 동력으로 인식하는 관점이 내재하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화가 지니는 경제적 가치나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논쟁이 존재한다. 우리가 문화에 돈을 쓴다고 해서 돈을 어디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에 좀 더 치중되어야 할 영역은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화에 대해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투자를 요구한다.

 안도<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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