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과 위선은 종이 한 장 차이
자선과 위선은 종이 한 장 차이
  • 최정호
  • 승인 2016.02.15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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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기괴 서러운 행동으로 흥을 돋우는 피에로는 우리에게 다소 불편하고 슬픈 웃음을 선물한다. 그의 과장된 입술과 눈은 웃음과 친절이 강요된 우리의 일상을 상기시킨다. 이 땅에 사는 99%의 인간은 ‘감정노동자’다. 우리는 ‘외교적 미소’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의 유전자에 조상들은 ‘외교적 미소’를 고정시켰다. 억지웃음으로 분장된 피에로의 얼굴은 ‘위장된 선의’를 선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서글픔을 상기시킨다. 피에로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위선적인 존재이다. ‘위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의 죄는 감추고 타인의 결함은 귀신처럼 찾아내고자 하는 ‘도덕’이라는 장신구로 치장한 위선적 존재이다. 자선과 위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자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의 일종이다. ‘감사’는 받은 은혜의 가치를 반영한다. 사람들은 착하게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착하게 보이고 싶을 뿐이다. 대통령도 재벌들도 궁지에 몰리면 재산의 기부를 약속하기를 반복하지 않는가?

 정치를 비롯한 사람들이 벌이는 많은 게임은 이 평판을 휘날리고 선전하고자 하는 다툼이다. 박원순은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성공한 좋은 모델이다. 공동체 안에서 좋은 평판에는 용기를 주고 명예로 보상하는 것이 ‘도덕’이 의도하는 바이다. 그러나 세금을 통한 공정한 재분배에 대한 문제가 기업의 장학금이나 공익활동으로 은폐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기업형 자선사업을 국가에 낼 세금으로 하는 직접광고를 국가가 눈감아주는 관행이라 간주한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이란 단어가 몇 년째 이 나라를 떠돌고 있다. ‘무상’이란 단어는 ‘의무’로 교체되어야 한다. 국가가 주인인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를 ‘무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복지’를 마치 국가의 ‘자선’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돈의 주인이 돈을 찾아가는데 왠 무상이란 말인가? 공짜라면 주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요즈음은 점입가경이다. ‘무상보육’이란 용어도 가관이지만 이를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간의 다툼은 그 잘잘못을 떠나 목불인견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국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데 이래가지고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더구나 국가 사정기관이 보육예산에 대하여 정부와 이견을 보이는 특정 교육청만 표적 중복 감사를 한다고 한다. 이는 치졸한 보복이지만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공화정을 부정하는 권력 남용이다. 공화주의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정체이다. 이러한 공권력의 오용이 어떻게 가능한가? 위기에 처한 것은 경제가 아니라 법치주의다.

 제우스는 수치와 복수의 여신이 떠나면 그 종족은 멸망할 것이라는 마지막 신탁을 내렸다. 불의에 대하여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죄악에 대하여 복수를 하지 않는 공동체는 곧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참을 수 없는 수치를 경험하였다. 21세기 한국에서 귀족들은 군대를 면제받고, 탈세를 한 것이 들통이 나더라도 정부 고위직에 등용된다. 온갖 부역과 세금을 면제받던 조선시대 고관대작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때문에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1세기 이 땅에서 신분제 사회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 반항하는 자들은 가혹하게 억압하고 가난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에는 준엄한 법의 심판이 권력자와 재벌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1%가 99%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곳간에 약탈이 허락될 수도 있는 혁명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일상화되어 버린다면 대법원이 성난 군중에 유린당할 수도 있다. 평화로운 개선이 어려운 것은 인간이 모두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선이 유보된 사회가 어떤 종말로 향하는지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어둠이 찾아오면 혼란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혁명은 모두에게 불행을 초래한다. ‘분노’라는 감성이 ‘계산과 타협’이라는 이성보다 더 효과적인 생존 수단이 될 수 있게 되는 비극의 탄생이 걱정된다. 평화를 위하여 불평등을 개선하는 긴급 성형수술이 필요하다. 탐욕을 줄이고 권력의 사용을 자제하는 길만이 이 땅의 1%가 풍요를 지속할 방법이다. 소시민인 필자 역시 지켜온 내 밥상도 뒤엎어 버려질까 봐 걱정이다. 자신의 행복은 항상 타인의 용인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최정호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이사<최정호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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