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의 한 역할
지역방송의 한 역할
  • 이동희
  • 승인 2016.02.11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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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도 방송을 듣·보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기왕에 들이는 시간 심심풀이 삼아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아니면 가불도 지연도 안 되는 한 번뿐인 인생을 소위 예능프로그램으로 시간을 죽이느라 TV에 빠져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앞의 경우는 주로 FM 라디오의 음악방송을 즐겨듣는 편이며, 뒤의 부류는 이 방송 저 채널 돌려가며 그저 웃음 헤픈 이들이 남발하는 저들의 쾌락을 대신 누리며 대리만족하는 듯하다.

 최근에는 또 다른 유형으로 소위 ‘종편’을 하루 종일 틀어놓는 업소가 늘어가고 있다. 손님들이야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는 잠깐이겠지만, 오다가다 주워들은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정설이 되는 경우를 생각하면 방송의 폐해가 아찔하기만 하다. 소위 정치평론가들이 등장하여 그 저의가 뻔히 드러나 보이도록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썰[說]의 장광설’은 사리 분별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참고 들어줄 수 없는 참혹한 지경이다.

 이런 방송을 듣·보는 이들은 한결같이 공영방송-공중파 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자연스럽게 케이블 방송으로 관심이 간다고 한다. 일면 타당한 항변이다. 어찌 보면 공영방송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는커녕 오히려 온 국민을 문맹으로 만들 작정이라도 한 듯이 수준 낮은 오락방송 위주로 편성하는 형편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런저런 방송 폐해에 노출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하는 길은 뻔하다. 상대적으로 덜 편파적이며 덜 저속하다고 여겨지는 EBS채널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TV를 끊고 산다는 사람들도 적잖게 만나 볼 수 있다. ‘거실에서 TV 치우기’는 한 때 가정교육을 중시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선호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편파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공중파와 편식성이 강한 종편에 신물 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고 했던 고전적 의미의 ‘TV 위해론’을 지나 이제는 ‘TV망국론’에 이를 정도로 방송의 횡포가 심하다. 예를 들자면, 시청자[소비자]들이 ‘듣·보고 싶은 프로그램’보다는, 공급자[방송사]들이 ‘듣·보게 하려는 프로그램’만을 내보내는 경우다. 특히 정치성향이 짙은 사건에 대한 프로그램이나 보도는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그것도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과 견해만 반복해서 틀어대는데 어떤 바보멍청이가 그런 방송을 지속적으로 듣·보겠는가?

 그런 중에도 우연히 KBS전주방송국의 <경제가마솥>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이자 지역방송으로서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모범사례로 삼을 만하다고 여겼다. 그 특징과 장점은 대략 이렇다.

 첫째, <경제 가마솥>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시청자들의 현재적 앎의 욕구와 일치하는 점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화제들을 다뤄 자연스레 시청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둘째, 패널들이 중앙의 유명 인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지역주민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셋째, 딱딱한 경제 관련 내용에 접근하기 쉽도록 도표화-계량화하여 제시하는 점이다. 넷째, 코믹한 터치와 격조를 지닌 유머러스한 진행은 단연 손꼽을 만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나 꼭 필요한 정보라도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려버리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섯째, 잘 짜인 구성원과 치밀한 콘티가 돋보인다. 대학교수, 소리꾼, 개그맨, 경제전문가, 시민단체 임원 등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하여 매주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의 역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시청자의 안목이다. 듣·보여 주는 대로 듣·보고 말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주체적으로 듣·보고 싶은 것을 고를 것인가? 경제건, 정치건, 문화 예술이건 내 인생을 권력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인민위원은 라디오를 켜 둔 채/ 내 운수를 점치고 있고/ 사제는 더기(마권 발행업자)로 밑질 리 없다며/ 오스틴 세븐(인기자동차)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저택에 사는 꿈을 꾸었고/ 깨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이런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니,/ 스미스는? 존스는? 그리고 당신은?>-(조지 오웰의「시」에서)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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