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로부터의 탈출
‘슬픈 열대’로부터의 탈출
  • 홍용웅
  • 승인 2016.01.2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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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출신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1930~40년대 아마존 유역의 4개 부족 원주민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를 정리하여 발간(1955년)한 저서가 그 유명한 ‘슬픈 열대’인데, 이 책에서 그는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는 서구문명의 침략적 성격을 탄핵하고, 절멸해 가는 원시성을 깊이 탄식한다.

아울러 문명 대 야만의 이분법적 사고는 서구인의 자기애가 지어낸 허구임을 통렬히 고발한다. 일견 미개해 보이는 원시풍습들도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나름의 합리성이 있으며, 서구문명보다 탁월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겁하는 식인풍습 또한 조상이나 적의 인육 일부를 취함으로써 망자의 덕을 획득하거나 그 힘을 부화하려는 의도지, 식도락 취향에서 비롯한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제의(祭儀)적 행위의 사악성은 오늘날의 해부학 실습이나 집단 학살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한 마디로 인류학자는 상이한 관습과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품는 편견과 오기를 엄중히 경고한다.

‘슬픈 열대’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 고장 전라북도가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존에 비할 만큼 전북의 문물이 미개하거나 그 정신이 비문명적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명쾌한 답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어쩐지 이 연상의 단초가 우리 도의 경제적 낙후성에 있는 것 같다.

경제적 이유 외에도 심적 측면에서 타지 사람은 물론, 우리 스스로 지적하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긴 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이다, 태도가 모호하다, 단합이 안 된다’따위의 부정적 견해 말이다. 이 땅의 삶의 조건들에 의해 우리 유전자 속에 이러한 속성이 심어졌음은 인정하자. 그러나 자책하거나 자괴할 필요는 없다. 하늘 아래 완전무결한 인종이 있겠는가?

하물며 그런 비판들은 표피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어서 전술한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정반대의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소극성은 신중성으로, 모호한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로, 단결력 부족은 개개인의 창의성으로 반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무릇 부정과 긍정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를 제대로 융합하면 엄청난 추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리뿐 아니라, 환경 측면에서도 그렇다. BC 63년 이래 2천 년간 디아스포라(이산)의 고통을 겪은 이스라엘은 1948년 재건국 후 국민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치명적 약점들을 강점으로 바꾸어 버린다. 전 국토가 사막이라는 불리함을 관개기술과 해수담수화 기술로 극복, 역(逆) 사막화가 진행되는 유일한 나라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궁경을 전기자동차와 원자력 기술로 타개하는 한편, 손바닥만 한 국토를 사이버 영토로 대체하여 전 세계를 시장으로 거느린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과거 산업화 시대 우리를 주눅이 들게 한 약점과 한계를 혁파할 수 있는 감성과 창의력이다. 이스라엘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낡은 판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새판을 재건하기 위한 도민의 결집한 힘이 요구된다. 다행히 우리를 둘러싼 여건은 우호적으로 조성되어 가고 있다. 연구개발 특구지정, 새만금개발 논의의 급진전 등으로 도민의 자신감 또한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역전시키는 지혜와 용기, 이것이 ‘내발적(內發的) 발전’의 원동력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는 슬퍼할 겨를도, 이유도 없다.

홍용웅<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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