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선배님께
안 선배님께
  • 이해숙
  • 승인 2016.01.19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를 맞아 설레야 할 풍경들은 없고 온통 시끄러운 소리들만 가득합니다.

 청와대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쯤이야 익히 귀에 딱지가 앉았지만, 선배네에서 나오는 소음은 자꾸만 맘에 걸려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돌이켜보면 선배가 정치인답지 않은 선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섰을 때, 우리는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만든 당에서 철수할 때까지만 해도 ‘문재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혁신이 필요해서’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끄러운 소리들 속에서도 보이는 게 있더군요.

 부산에서 자란 선배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외지사람이 이사 와서 한 마을의 식구가 되는 데까지 삼 년 정도가 걸립니다. 그 사람을 못 받아줄 만큼 배타적이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기본으로 하는 마을의 구조상 식구로 받아들이기까지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짓는 논밭 농사의 꼴을 살펴 그 사람을 알아 가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에서 그 사람이 함께해도 좋을 사람인지를 알려는 절차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식구가 되면 어지간한 잘못은 눈감아 주고 감싸 안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리 잡고 뜻을 얻으려는 선배의 자세는 틀렸습니다.

 마음을 줄 우리가 선배를 이해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마음을 얻어야 할 선배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요?

 선배가 이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들이 지금껏 해왔던 정치적 선택에 대해 이해부터 하셨어야 옳았습니다.

 단 한 번도 정치적 중심에 서보지 못한 변방의 땅, 호남의 정치적 선택은 늘 ‘생존의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그것이 ‘진보성의 선택’으로 드러났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방에서 살았지만, 국가의 흔들림을 단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외세의 침략과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만들고자 했던 갑오농민전쟁에서부터 지리산의 저항과 광주민중항쟁의 도도한 역사 속에 짙게 밴 한숨이 호남의 정치적 선택에 ‘진보성’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이었다는 걸 간과한 것입니다.

 선배가 우리의 마음을 얻겠다고 당에서 철수하는 과정부터, 창당하는 과정, 함께 할 사람들을 영입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선배의 얼굴에 드리운 ‘구태의 정치’를 읽고야 말았습니다.

 지금 선배의 곁을 지키겠다고 함께 철수한 사람들의 면면에서, 선배의 뜻에 함께하겠다고 분기탱천하며 발기하신 분들의 얼굴들에서, 이명박이 오버랩 되는 영입인사들의 모습들에서 ‘철수의 이유인 혁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배가 구상하는 정치집단의 정치적 지향에서 ‘5,18을 삭제하고 이승만을 국부’로 세우는 것에서 ‘철수의 이유인 혁신’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늦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노무현을 선택했고 문재인도 선택했습니다. 또 한 명의 부산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그러나 거기엔 전제가 있습니다.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있는데 선배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진보적 지향과 진정성입니다. 그걸 갖출 때만이 우리는 선배를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구태의 틀을 벗고 ‘철수의 이유인 혁신’을 우리가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선배가 그토록 원하는 ‘우리의 자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바람이 찹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춥기만 합니다.

 이해숙<전북도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