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 <5>빈곤의 저주
[전세대란] <5>빈곤의 저주
  • 박기홍 기자
  • 승인 2016.01.19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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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의 전세시장이 불안하다면, 과연 얼마나 불안하고 왜 그럴까?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의 라태원 공인중개사는 “팔려고 내놓은 물량이 100이라면 전세 물건은 아예 0이라고 봐야 한다”고 ‘전세 품귀현상’을 설명했다.

 라 중개사는 전세 수요는 많은 데 공급이 완전히 끊긴 것이 문제라는 진단이다. 그는 “전주 효천 등 향후 공급될 아파트는 풍성한 데 기존 아파트보다 시세 측면에서 차등화되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시각이 많다”며 “기존 아파트 가격이 상한가를 쳤다고 보는 집주인들이 전세 물량마저 거두어 무조건 팔려고 내놓는 까닭에 전세 품귀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라 중개사의 분석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국내 최고의 전문기관이 발표한 통계에서도 전북의 전세 대란이 확연히 드러난다. KB국민은행이 올해 1월 11일 기준으로 발표한 ‘시·도별 전세수급지수’에 따르면 전북은 182.5를 기록, 전국평균(170.4)을 크게 웃돌았다.

 ‘전세수급지수’는 최하 0에서 최고 200 범위 안에서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전세 공급부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도내 부동산 중개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세수급지수만 놓고 보면 연중 전세난에 시달리는 수도권(174.3)보다 전북이 더 심각한 지경”이라며 “전북의 최근 전세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라고 읊조렸다.

 전세 품귀 현상은 ‘전세거래지수’에서도 확인된다. 전세 물량이 없어 올 들어 거래가 뚝 끊기며 실종됐고, 전북의 전세거래지수는 8.6을 기록하는 데 머물렀다. 전국평균(18.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거래지수가 8.6이라는 뜻은, KB국민은행 조사에 응답한 전북 공인중개사의 90%가량이 “전세 거래가 한산하다”고 하소연했다는 의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세난 속에서 목돈이 없는 서민들만 더욱 골탕을 먹고 있다는 점이다. 집주인들이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고, 그나마 보증금을 낮춰 월세를 올리는 추세가 확연해지고 있다. 이 경우 돈 없는 빈곤층만 더 서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전북의 반전세 현실’을 확인하기 위해 본보는 시중에 나와 있는 매물을 직접 분석해 보았다.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A아파트 83㎡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40만원, 혹은 보증금 1천500만원에 월세 45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월세가 보증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2.0%와 3.0%, 보증금이 적을수록 높았다.

 이보다 작은 아파트는 더 심하다. 전주시 아중리의 B아파트 69㎡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0만원, 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의 조건이 붙었다. 월세가 보증금에서 점유하는 비율은 각각 4.0%와 무려 9.0%였다.

 본보가 전주시내 매물 1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입자가 집주인에 찔러 놓는 전세금(보증금)이 적을수록 월세 부담이 최고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전세금을 낮춰 외곽으로 나가는 전세 난민의 수렁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구조가 문제”라며 “전세난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할 지방행정 차원의 입체적이고 단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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