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개봉한 ‘러브레터’
세 번째 개봉한 ‘러브레터’
  • 장세진
  • 승인 2016.01.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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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탕’ 하면 슈퍼액션이나 스카이 드라마 같은 케이블 채널이 떠오르지만, 지상파 방송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 특선영화들이 그렇다. 극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바 재개봉이 그것이다. 재개봉 유행은 2013년 ‘러브레터’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슌지)는 1999년 11월 20일 개봉했던 일본영화다. “일본영화 최초로 140만 관객을 돌파했다”(한겨레, 2016.1.16)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전산망으로 관객 수가 집계되던 시절이 아니어서다. 다만 흥행영화의 경우 일간신문에 서울의 관객 수가 곧잘 나오곤 했다. ‘러브레터’의 서울 관객 수는 70만 명이다. 당시로선 대박이다.

 2013년 2월 재개봉한 ‘러브레터’는 4만 5,421명을 동원했다. 이로부터 옛 영화의 재개봉은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진 인상이다. 가령 같은 해 12월엔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중경상림’(1994)과 ‘화양연화’(2000) 재개봉이 이어졌다. 이 소식은 ‘일대종사’편에서 이미 전한 바 있다.

 2015년에도 재개봉 열풍이 거세다. 가령 2005년 개봉작 ‘이터널 선샤인’이 11월 10일 개봉하더니 영진위 입장권통합전산망 2016년 1월 16일 기준 49만 771명을 동원했다. 2005년 17만 명에 불과했던 관객 수가 두 배 이상 불어난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2003년 개봉작 ‘러브액츄얼리’, ‘그녀에게’ 등도 12월 17일과 31일 각각 재개봉했다.

 2016년 1월 14일 재개봉한 ‘러브레터’는 무려 세 번째 개봉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재개봉에 앞서 이와이 슌지 감독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10일부터 20일까지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열린 ‘이와이 슌지 기획전-당신이 기억하는 첫 설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회전문 관람’ 관객이 제법 있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러브레터’의 회전문 관람은, 이를테면 역사적이거나 아주 이례적인 일인 셈이다. 단, 극장 대신 TV를 택했다. 세 번째 개봉에 맞춰 EBS가 ‘일요시네마’(1월 17일 낮 2시 15분)로 방송한 것.

 얼추 16년 만에 ‘러브레터’를 다시 본 셈이다. 느낌은, 그러나 첫 개봉 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러브레터’는 파란 눈에 노랑머리가 아닌 배우들을 보기가 그리 낯설지 않다는 것과 설원이나 해돋이 등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외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영화이다.

글쎄, 노골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을 기대한 때문인지 모를 일이지만, ‘러브레터’는 오히려 멜로영화의 공식을 파괴함으로써 다소 엉뚱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동명이인에 얽힌 추억을 풀어나가는 형식이 새롭긴 할망정 거의 추리물같아 하는 말이다.

 ‘러브레터’는 단조로운 등장인물의 정적(靜的)인 영화인데도 한 번 봐서는 얼른 이해 안 되는 약점을 갖고 있다. 지루할 만큼 일상적인 디테일에 치중하면서도 어쩔 때는 내용 전개가 지나치게 스피디하게 진행돼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현재와 과거 화면이 냉큼 구분 안 되게 뒤섞여 있고,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1인 2역(히로코와 이츠키)도 감쪽같거나 매끄러워 보이지 않는다. 또 죽은 애인에 대한 히로코의 연정이 이야기 중심축을 이루다가 결말은 이츠키의 첫사랑으로 맺어져 이른바 ‘의도의 오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감동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 할까.

 다만, 정지된 자전거의 페달을 돌려 불을 밝히는 장면이나 중3 학생들로 설정한 등장인물들의 풋풋한 사랑놀음이 섬세하게 펼쳐져 참신하고 흥미롭다. 특히 1990년대 학생들이 직접 도서부장을 뽑는 민주주의나 여학생들의 성인 같은 헤어스타일 등은 이 땅의 학교 현실과 대조되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 관객 심리다. 극장 개봉 전 불법 비디오를 통해 많이 본 것으로 알려진데다가 그저 그런 영화인데도 첫 개봉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3년 사이에 두 번씩이나 재개봉하기에 이르고, 소정의 관객몰이를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장세진<한별고교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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