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보호
약자보호
  • 김철승
  • 승인 2016.01.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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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응답하라 1988’이 인기가 높다. 30년이 채 안 된 이야기지만, 참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많이 변하고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그땐그랬지”라고 잊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고 어린 시절, 어려웠던 때의 추억에 빠지게 하는 이웃들과 가족에 관한 훈훈한 드라마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은 어느덧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선진국이란 어떤 모습의 나라인가? 필자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잘 돼 있어야 선진국이라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과 어린아이, 노약자와 여자들이 불편, 불안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나라라 생각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사회제도들과 자연스럽게 몸에 밴 매너가 선진국의 척도가 된다고 본다. 사회적 제도는 적절한 법의 제정이 필요하고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개인들 또한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없이 자기편한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눈치를 먹어야 한다. 이제는 그런 때가 되었다.

약자중에 약자인 어린아이에 초점을 맞춰보자. 부모에 의해 살해추정되며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된 부천의 한 초등학생(2012년 당시 7살)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왜 우리사회는 아동학대를 차단하는 사회시스템이 부족한가?’라는 반성의 신문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아동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교육수준을 가지고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아보자. 미국은 매일 24만대의 스쿨버스가 2,400만명 이상의 학생들을 실어나르면서도 승차학생 사망사고가 한 건도 없는 주가 45개나 된다(2002년 통계). 어떻게 이런 좋은 결과가 오는가? 간단하다. 다들 어린이보호제도를 지키고 안 지키면 엄청난 제제가 있는 시스템 때문이다. 한 예로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뒤차 뿐 아니라 옆차선을 달리던 차도 멈춰야 하고, 맞은 편에서 오는 차조차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는 차가 있다면 주위사람들에 의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의 과속이나 주정차 위반 또한 엄청난 벌금을 내거나 법정에 출두할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높은 변호사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총기사고가 잦은 요즘 당연히 중·고등학교에 교내 경찰이 상주한다. 일정수위이상의 폭력발생시에도 경찰이 출동하여 학교내에서도 공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부모는 13세 이하의 아동을 보호자 없이 혼자 집에 둘 수 없다(1996년 개정 아동학대방지법).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되면 누구라도 신고해서 경찰이 달려오고 아동폭력이 확인되면 바로 친권을 박탈한다. 아동폭력에 관한 한 재판부의 관용을 기대하기 어려워 결과에 따라 수십 년의 감옥생활은 감수해야 한다.

선진국에서 아동학대예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동 한 개인의 안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2013년 11월 미국 위스콘신대학연구팀의 연구결과, 학대피해아동들의 대뇌는 특정부위간 연결이 손상되어 있었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불안과 공포감정을 조절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성인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대부분이 아동학대 피해경험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1991년 마르고리베라의 ‘다중인격장애’연구에서는 총 185명의 다중인격 장애환자중 98%가 어린시절 아동학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연방수사국(FBI) 보고서는 부모를 살해한 존속살해범 300명 중 90%가 아동학대 피해자였고, 피학대 후유증이 살인의 원인이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이들이 학대받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사회가 되어야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약자보호는 우리 사회의 당연한 책무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을 선진시민으로 키워내는 안전장치이다.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 못지 않게 시민들의 행동양식도 중요하다. 이미 우리는 다 배웠고 알고 있는 내용이다. 문을 열었을 때 뒤에 오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하고 문을 잠깐 잡아주는 배려의 매너가 시작이다. 좁은 통로에서 어깨를 부딪쳤을 때 가벼운 목례나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속도를 늦추자. 스쿨버스나 노란색 학원버스가 멈춰 서 있다면 긴장하자. 우린 이미 88년 곡목길에서 놀던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어른으로 성장했고 선진국을 넘보는 경제적 힘도 있다. 정장과 구두를 신었다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할 때이다. 어른답게.

김철승<의학박사, 예수병원진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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