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4> 심각한 전세 난민
[전세대란]<4> 심각한 전세 난민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6.01.18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 완산구 서신동에 사는 주부 송모(37)씨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주민등록 초본을 떼려면 항상 걱정이 앞선다. 개인별 주소 이전사항이 기재된 초본의 경우 통상 A4 용지 크기의 서류 한 장이면 끝난다. 반면 송씨는 결혼 10년 동안 무려 11번이나 이사를 한 까닭에 초본이 석 장을 넘어가 겸연쩍은 순간이 많았다.

한번은 담당 공무원이 초본서류를 보고 “이사를 참 많이 하신 것 같다”고 물어봐, 송씨는 몸 둘 바를 몰랐단다. 송씨의 초본은 수입은 고정된 상태에서 전세금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형편에 맞게 사는 집을 줄여야만 했던 ‘21세기 전북판 전세 난민’의 뼈아픈 현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송씨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충남 논산에서 결혼한 후 전주로 이사와 보증금 3천500만원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송씨는 “10년 안에 내 집을 마련하겠다”며 당찬 포부와 넉넉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결혼 전에 그리 넉넉지 않은 집에서 살아 학생시절부터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전세 난민의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왠걸? 현실은 송씨의 결심과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남편이 일하던 건설회사가 8년 전에 갑자기 부도 처리되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고, 매월 100여만원의 실업급여로 간신히 1년을 버텼다. 청년실업률도 10% 이상의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남편의 재취업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4년 전부터 전주지역 전세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집주인이 재계약 조건으로 보증금 1천만 원 인상과 별도로 월 10만원의 월세 인상을 요구해왔다. 아아!! 그의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형편에 맞는 45㎡(옛 15평)의 다세대 주택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엔 1년에 적게는 한번에서 두 번 이상 보따리를 싸는 난민 처지가 됐다.

지금은 처음 결혼하면서 마련했던 보증금 3천500만원도 생활비와 이사비용으로 모두 까먹고 전주 외곽에 있는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40만 원짜리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 10만원 이상을 포함하면 매달 50만원 이상을 주택 관리비용에 쏟아붓고 있다. 소규모 건설사에 재취업한 송씨의 남편이 받는 월급(200만원)에서 무려 25%를 집세에 투입하다 보니 저축은커녕 현상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신혼 때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접은 지 오래고, 이젠 보증금 1천만원을 지키는 게 목표가 됐습니다. 이런 절망감이라니…”

송씨는 “서민들이 버는 돈은 제자리거나 오히려 줄고 있는데 주거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소망’은 꿈에서도 실현 불가능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전북지역 주택소유비율이 이미 100%를 넘어섰지만 투기목적으로 집을 두세 채씩 사는 경우가 많아 아직도 도내 전체 세대의 30%는 최소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임대주택을 찾아 헤매야 한다. 문제는 올해부터 담보대출 요건이 대폭 강화되면서 주택구입이 어려워져 전세 수요가 더욱 늘어난다는 점이다.

공인중개사협회 전북지부의 박재수 지부장은 “올해 재건축 재개발 사업장의 멸실세대 발생과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강화로 전세난이 더욱 심각하고, 월세금 상승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월세지원 방안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종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