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돌
종이로 만든 돌
  • 나영주
  • 승인 2016.01.14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필자는 <전북도민의 수준>이라는 칼럼에서 올해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가 전북도민의 수준을 살필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쓴 바 있다(전북도민일보 2016. 1. 11. 칼럼 참조). 지지후보의 자질이나 그가 속해있는 정당의 정견, 정책을 살피지 아니하고 단순히 지역적 정서나 호감의 차원에 기반을 둔 ‘묻지마 투표’를 경계하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의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투표란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의 말처럼 ‘종이로 만든 돌(paper stone)’을 던지는 행위다. 제도권 정치체제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통한 민의의 직접 분출 통로를 마련하고 있을 뿐, 사실상 민의를 반영하는 제도로 투표를 통한 선거만 허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백날 도로를 점거하고 민중대회를 개최하여도, 제도권 정치를 직접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것은 ‘짱돌’이 아닌 ‘투표’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투표행위는 합리적인가. 지금까지 선거행태를 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만 보아도 그렇다. 계급적으로 보수정당으로 평가받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계층은 연령은 50대 이상, 대졸 이하의 학력, 농업 및 제조업 등 이른바 블루칼라 계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했다. 반면 진보 개혁 성향의 문재인 후보는 20,30대 젊은층과 대졸 이상의 학력, 화이트칼라 계층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니다. 미국의 보수당인 공화당의 지지층은 저소득·저학력층이 많고, 민주당 지지층은 반대의 성향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진보정당은 분배에 집중하고 보수정당은 성장을 추구한다고 알려졌는데, 지지층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정반대 성향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여러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기업 위주의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소득분배 효과를 직접적으로 체감하였기에(물론 이른바 ‘낙수효과’의 실재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 그 중 하나다. 한편으로 전통적인 좌파 진영의 해석, 말하자면 ‘허위 이데올로기’의 세례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람시와 같은 좌파 학자들은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대중들을 포섭시켜 허위의식을 세뇌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포스트모던 정치학자들은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일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여러 분석 가운데 어느 것이 위 현상에 대해 완벽한 해석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자신의 계급과 투표의 불일치 현상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지역균열이다. 지역감정에 기대어 혜택을 보는 이들은 주지하다시피 정치인들이다. 그동안 호남과 영남 지역민들은 이른바 ‘지역 토호’라고 불리는 정당 후보에 충성도 높은 투표를 하였다. 그 결과 전주와 대구, 광주와 부산이 얼마나 많은 지역적 성장을 이루었는지, 혜택이 지역민들에게 돌아갔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충실한 투표를 하는 집단이 바로 강남 3구 주민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후보자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투표의 시작점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성찰이다.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 자신의 세계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념에 대해 냉정한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전라북도 도민으로서 어떤 정당과 후보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이념에 부합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몰표로서 정치인들에게 응답한다면 종이로 만든 ‘돌’은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돌에 불과할 것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