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우상 타파는 가능한가
‘지역’ 우상 타파는 가능한가
  • 권영후
  • 승인 2016.01.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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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4월에는 인간의 권력욕구가 치열하게 각축하는 선거가 있다. 국민들은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정치를 욕하며 혐오한다고 하면서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선거에 임할 것이다. 국회는 여당과 야당이 각기 다른 이념과 정책, 갈등 사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논의하며 합의점을 찾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국회에 대해 부정 평가를 할 뿐만 아니라 욕구불만의 배설장치로 여긴다.

 선거의 해가 도래하면 유권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갖가지 전략과 홍보 선전술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정책 투표보다는 감성 자극과 상징 만들기, 이미지 조작에 의해 지배되는 묻지마 투표가 승패를 결정짓는다. 여기에 유권자의 마음속에 이미 만들어진 ‘우상’이 개인과 집단의 투표를 판가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선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상을 만들고 악용하는 일이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을 유혹하는 기술이나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우상이 선거를 좌우한다면 개인의 투표는 싸구려 행위가 되고 정치혐오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상은 맹목적으로 인기를 끌거나, 숭배되는 대상을 말한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영향으로 만들어지고 내재화된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우상은 강한 확신으로 뒷받침되어 개인이나 집단의 이성적 판단을 위협하고 사고를 제약하는 원인이 된다. 다양성이 무시되고 집단최면이나 집단광기의 극단적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종족’, ‘동굴’, ‘시장’, ‘극장’의 우상을 타파해야만 이성의 자유로운 판단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지배하는 대표적 우상은 호남과 영남으로 대표되는 ‘지역’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지역 패권주의는 우상으로 굳어져 지금도 우리의 정치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지연을 찾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투표행태는 지역의 권력 욕망, 관습, 문화 등이 결합하여 지역 독점체제를 낳고 공고화되었다. 지역 우상을 타파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시지프스 신화처럼 무산되기 일쑤였다. 지역이라는 우상은 베이컨이 말한 네가지 우상이 융합되어 풀 수 없는 난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과잉 일반화된 지역 우상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집단의 응집전략으로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나의 사회적 구조가 된 셈이다.

 이러한 지역 우상 숭배의 확산과 정착에는 정치인의 책임이 크지만 대중미디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가 모든 상황을 지배하는 대중문화 시대에 우상은 미디어가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이 우상의 윤곽을 그리면 우상제조기인 미디어는 제품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정치권력과 일부 세력이 미디어를 지배하고 정보조작과 왜곡을 일삼는다면 우상은 필요에 따라 쉽게 만들 수 있다.

 지역감정의 해소를 위한 많은 대안들과 낙관적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스마트 시대에 소통의 민감도가 상승하고 전국 네트워크가 가능한 신세대의 등장 때문에 지역의 영향력은 차츰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선거에서 고령화와 미디어 독점, 지역 프레임 및 이미지의 강세 때문에 우상 타파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작년 우리 사회는 과잉 정치와 편가르기, 국정교과서와 메르스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불통, 소외된 사람들과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경멸, 헬조선, 청년실업과 금수저 흙수저, 불평등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었다. 이러한 의제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지역이라는 우상은 견고한 성을 쌓고 기득권을 지키고 있다. 호남지역을 발판으로 시작된 야권 경쟁은 패전이나 다름없는 ‘피로스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역은 주술과 제의라는 힘으로 역동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지역의 탈주술화를 위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가. 지역 우상을 타파하고 소통 구조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 선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권력쟁탈이라는 냉험한 현실에서 이성과 합리성은 발을 디딜 틈이 없다. 지역 우상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면 지역에 근거하여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찾는 노력이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이 아닐까. 성장, 경쟁, 불평등보다는 인간의 존엄성, 신뢰, 공정, 투명한 소통, 공동체 복원, 함께하는 사회를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삼는다면 우상타파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지역 우상 타파, 이제부터 시작이다.

 권영후<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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