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勇氣)의 역설
용기(勇氣)의 역설
  • 장상록
  • 승인 2016.0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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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이나 조류독감(AI)이 발생했을 때 한국과 일본의 대응방식은 대조적이다. 한국은 언론을 통해 전 국민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국민의 알권리는 물론 해당 질병의 조속한 퇴치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반면 일본은, 관계자 외에 일반인들은 거의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으로 대응한다. 그렇다고 방역 자체를 허술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국민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가 없고 방역에도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떤 방식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과 그 해결에 대한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DNA와 언어 구조면에서 지구상 다른 어떤 민족보다 가장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이란 말 그대로 양 국민은 참으로 많은 점에서 너무도 다르다.

  지하철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한 양국 국민의 인식도 그렇다. 한국인은 사고와 자살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개인적 책임영역에 대한 불필요한 사회적 지출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일본인이 ‘염치없는 사람’이란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일본인은 한 사람이 살았다는 것 보다는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희생됐다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결국 일본인 사유체계의 핵심은 ‘다른 사람에게 폐(弊)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동영이 MBC 기자시절 고베 대지진이 있었다. 현장을 다녀온 그가 한 말 중에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참혹한 폐허 속에서 그 어떤 곡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해자 가족들이 자리한 이재민 수용소에서 조차 큰 소리 내는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부모와 자식의 주검 앞에서 통곡하지 않을 한국인을 상상하기 어렵다.

 극단의 슬픈 감정조차 자제하는 일본인과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출하는 한국인. 어떤 이는 ‘일본인의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설명한다. 그렇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개인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미덕이다. 그런데 왜, 적잖은 사람들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너무도 이성적인 일본인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타이타닉호에서 생존한 일본인이 평생 짊어져야 했던 멍에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너가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이 살았을 텐데 참으로 염치없다’는 사고를 과연 이타심의 발로로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아름다운 행동도 집단의 논리에 매몰된 개인의 도덕성에 근거할 때 그것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용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조작이 있다. 바로 가미가제(神風)다.몽골군의 침략에서 일본을 구한 태풍을 그들은 가미가제로 불렀고 승리를 담보할 용맹함의 상징으로 부활시켰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돌아오지 못할 비행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정에 돌진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야스쿠니(靖國)에서 신(神)이 돼있다. 과연 많은 일본인이 믿는 것처럼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죽어서 신이 된 것일까.

  타인에게 조금의 폐(弊)를 끼치는 것도 조심하는 일본인이 침략전쟁을 통해 벌인 살육을 설명하는 것은 가미가제의 용기를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겐 가미가제가 잘못이라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폐(弊)가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때론 가장 용감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비겁하다. 내가 가미가제의 용기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은 한국이 떨쳐버릴 수 없는 이웃이다. 그렇기에 더욱, 악연을 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한일 양국 모두의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과연 새 역사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용기는 무엇인가.

 “빨간 신호도 같이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생각은 결코 용기가 아니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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