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 당선작] 하송씨 ‘화해花蟹’
[신춘문예][시 당선작] 하송씨 ‘화해花蟹’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5.12.28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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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비뚜껑을 열자 꽃처럼 붉은 꽃게가
 철갑을 하고 있다
 건들기만 하면 잘라버리겠다는 듯
 엄지발을 치켜든다
 뭉툭한 가위로 발을 절단하자
 소리를 지르는 것은 꽃게가 아니라
 가위였다
 골수가 울컥 쏟아지자
 바다는 잠잠했다
 사는 일은 파도가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갯벌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것
 꽃게, 파도가 거칠수록
 두 눈 똑바로 뜨고 등딱지에 힘을 준다
 한 평생 꽃처럼 배를 보이지 않는 것이 꽃게다
 섬 하나가 안테나를 세우고
 육지로 나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지
 바닷바람에 허리가 꼿꼿하다
 바다를 버린 꽃게, 절대 바다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해花蟹 : 꽃게

 

◆ 당선소감

꽃게! 말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속살이 꽉 찬 꽃게는 담백하면서도 입안에 오래도록 남는 특유의 향이 으뜸입니다. 꽃게는 찜, 탕, 게장, 무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합니다. 꽃게는 꽃처럼 예쁘게 생겨서 꽃게가 아니라 삶으면 빨개져서 꽃게입니다. 잘 익은 꽃게의 두 집게발이 치켜든 가위 같습니다. 작게는 쓸데없이 웃자란 욕심과 아집으로부터와 크게는 부정부패까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는 듯이 집게발이 단호합니다.

 꽃게에 대한 시를 완성하고 제목을 정하는데 적잖게 고심을 했습니다. 꽃게의 옛 이름은 ‘곳게’입니다. 곳은 송곳(錐)으로 집게다리에 돋은 가시가 송곳처럼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암녹색 바탕에 구름무늬가 있는 등딱지는 옆으로 퍼진 마름모꼴로 두 집게발은 크고 길며 억세게 생겼습니다. 꽃게를 한자어로 시해矢蟹· 유모· 발도撥棹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것칠에 · 살궤 · 곳게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는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되어 결국 ‘화해花蟹’라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면 ‘화해’는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적대 감정을 푼다는 뜻도 있어서 나름대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는 범접할 수 없는 학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태산보다 높다는 생각으로 무척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절차탁마는 절제의 미덕을 알게 했고 확장된 사유로 시의 발자국을 따라가는데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고통이라면 고통의 절반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때로 결핍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결핍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시에는 혼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해花蟹를 계기 삼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 ‘화해花蟹’를 당선시켜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 [심사평] 김동수<미당문학회장,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금년에 600여 편의 운문이 응모하였다. 시조와 동시, 한시 등,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였다. 이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민옥순의 <헛발을 딛다>와 조양비의 <낯선 폭설>, 황병욱의 <포도밭 사막> 그리고 지연의 <다르미타>와 하송의 <화해>였다.

  민옥순의 <헛발을 딛다>는 조각이 난 접시의 형상을 치밀한 묘사와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선을 끌었고, 조양비의 <낯선 폭설> 또한 다소 보헤미안적 풍경을 능란하게 묘사하였다. 두 작품 모두 언어의 직조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직조와 묘사가 내용의 공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황병욱의 <포도밭 사막>은 흉작으로 남은 농부의 신산한 삶을 짜임새 있는 구성과 미감으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3연의 ‘번화가’와 끝 연의 ‘열매를 맺는다.’는 돌연한 시어의 혼란과 상투적 인식이 새로운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끝까지 고심했던 작품은 지연의 <다르미타>와 하송의 <화해>였다. 지연의 작품은 쉬르레알리즘 기법을 연상케 하는 자유분방한 에스프리와 비유 그리고 감각적 묘사가 그간의 문학적 역량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다르미타>라는 제목의 낯설음에서 오는 이질감이 끝내 ‘불꽃의 접점’을 찾지 못해 아쉬웠다.

  <화해>는 ‘꽃게와 바다’라는 비유와 상징의 공간 속에서 ‘갯벌 속으로∼몸을 숨기’며 오늘의 고난을 극복해가고자 하는 화자의 자기 고백적 주문이 긴장과 이완의 율조 속에서 하나의 ‘빛’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한 평생 배를 보이 않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연함에서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된다.

  평이한 듯 보이나 체험이 육화된 그 평이함이 오히려 어떤 결기와 진정성으로 느껴져 앞으로의 가능성에 믿음을 갖고 당선작으로 올렸다. 보다 정진하여 격조와 품위를 더한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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