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천하가 길을 잃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천하가 길을 잃다
  • 이정덕
  • 승인 2015.12.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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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신문은 대학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하였다. 교수신문이 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 5개를 놓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524명(59.2%)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택했다고 한다. 두 번째 사시이비(似是而非: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아니다)가 14.3%인 것을 보면 상당히 압도적으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택했다.

 혼용(昏庸)은 혼군(昏君:사리분별이 어두운 군주)과 용군(庸君:무능한 군주)을 합한 것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고 무도(無道)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또는 사람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이 붕괴한 상태를 말한다. 해석을 하면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워졌다는 뜻이다.

 공자는 자신이 살던 춘추전국시대를 천하의 도가 무너져 내린 시대로 보았다(天下無道). 논어 태백 13장에서 천하유도칙견(天下有道則見) 무도칙은(無道則隱)이라고 말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몸을 드러내고, 도가 없으면 몸을 숨겨야 한다는 뜻이다. 천하의 도가 무너지면 숨으라고 한 것을 보니 공자는 참으로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맹자는 이루장구 상편에서 천하무도(天下無道) 소역대(小役大) 약역강(弱役强)라고 했다. 천하의 도리가 무너지면, 강자가 약자를 부린다는 것으로, 힘으로 통치한다는 뜻이다. 맹자는 天下有道인 상황에서는, 즉 천하가 정상적이라면, 德과 賢明함으로 통치한다고 설명하였다.

 이승환 고려대학교 교수는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연초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 결국 정치지도자의 무능력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2015년을 ‘어리석은 군주 때문에 천하가 길을 잃다(昏庸無道)’라고 표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크게 퇴보하였다. 프리덤하우스는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와 인터넷자유가 3년 내내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이 온갖 거짓말과 잘못된 권력행사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신뢰도는 42개국 중 39위를 차지하였다.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는다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거대언론들이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 2014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서슴치 않고 있다. 특히 일부 종편은 한국의 언론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력자를 감시하여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언론들이 잘못된 권력자와 한 편이 되어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일삼으며 혼용무도(昏庸無道)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선정된 사자성어 사시이비(似是而非)는 공정·객관으로 포장된 국가의 정책이나 권력행사나 주장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사시이비를 추천한 석길암 교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한 최근 정부정책을 보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거나,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근거를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조차 날조해 정당성을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이 같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세상이 갈수록 태산이다.

 이정덕<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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