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팥쥐로’를 아십니까
‘콩쥐팥쥐로’를 아십니까
  • 강현진
  • 승인 2015.12.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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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쥐팥쥐로’ 참으로 정감 있는 이름의 길이 전북에 2곳 있다. 한 곳은 김제에, 한 곳은 전북연구원 앞길로 전주 상림동에서 효자동 20여㎞에 이르는 길이다. 이야기는 조선 중엽 전주 서문 밖 30리 부근에 사는 퇴리 최만춘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내 조씨와 결혼한 지 20여년 만에 콩쥐란 딸을 낳았는데 아내는 100여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최만춘은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는다. 계모는 자기의 소생인 팥쥐만 감싸고 콩쥐는 몹시 학대하며 온갖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시키는데 콩쥐는 두꺼비와 새떼 등 도움을 받아 일을 해결한다. 그 후 줄거리는 말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졌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주 서문 밖 30리’이다. 이에 근거해 주변을 지나는 길에 이야기의 주인공을 대입시킨 것이다.

또 전북에는 ‘정여립로’와 ‘정언신로’가 있다. 정여립은 조선 선조시대 사상가이자 개혁주의자로 그의 출생지인 전주 색장동 일대에 명명되었으며 정언신은 조선 선조시대 우의정을 지낸 분으로 전주 인후동 인덕원 인근도로가 그의 길로 불린다. 이처럼 길의 이름에는 지역성과 역사성이 담겨 있고 짙은 향토적 애향심도 함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굳이 길의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 지역의 길에 담겨져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길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역설적으로 역사와 문화는 그 길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

길은 고대로부터 정치적·군사적·경제적·문화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길은 기능적 목적성이 더욱 명확하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길은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따르면 총 10개의 대로가 있었다. 한양에서 북쪽으로는 의주대로와 경흥대로가 있고 동쪽으로는 평해대로와 봉화대로, 남쪽으로는 영남대로와 통영대로 삼남대로, 서쪽으로는 강화대로와 수원별로, 수영별로가 있다. 이중 의주대로와 영남대로,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교역과 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길이었으며 경흥대로는 가장 연장이 긴 길이었다. 전북을 지나는 길은 해남대로라고도 불리는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있는데 해남대로는 한양에서 공주를 지나 정읍, 나주, 해남에 이르는 길로 송시열과 김정희, 정약용 등이 유배를 가며 걸었던 유배의 길이기도 하였으며 통영대로는 천안, 전주, 남원, 통영에 이어지는 호남을 지나 영남에 이르는 화합의 길이기도 하였다.

길은 기본적으로 이동성과 접근성을 주기능으로 하고 안전성, 경제성과 효율성, 환경친화성 등도 고려되고 있다. 이동성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사람이나 물류를 빠르게 수송하는 역할을 하고 접근성은 집이나 사무실 또는 관광지 등 한 지점으로 접근이 용이하게 하는 정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60년대 들어 경제 개발과 함께 길의 면모를 일신하게 된다. 고속 성장의 기반인 도로망을 확충하고 70년대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도로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그 후 어지간한 지역은 동일 생활권으로 묶여지고 전 국토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다. 고속도로는 인구와 산업이 집적된 도시와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를 빠르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연결해 상호 교환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역 개발을 유도하는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요즘의 길은 빡빡한 시간만큼 이동성에 큰 방점을 두는 듯하다. 중간의 기착지가 없이 목적지만으로 달려가는 접근성이 소외되고 옛 길의 정취가 도외시되는 스피드만의 길이 되고 있다. 이제 길도 국민들의 삶 속에서 찾는, 각 지역의 문화와 맥을 같이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통행의 목적에서 벗어나 휴식이 있고 놀이가 있고 생활이 함께하는 공간으로서의 길로 바뀌어야 한다. 스쳐가는 길이 아닌 머무는 공간을 찾아가는 길로, 주민들과 소통하고 생활에 활력을 높여주는 길이 되어야 한다. 빠른 이동 만에서 벗어나 여유가 있고 인문학이 있고 생활이 있는 길로 변모하길 기대한다.

강현직<전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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