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희망
가짜 희망
  • 나영주
  • 승인 2015.12.07 1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선 밝혀둘 것이 있다. 필자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다. 사람들은 이해관계 있는 당사자의 주장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해 주장을 하면, 당부를 살피려 들지 않고 일단 이해관계인의 주장이니 편협하거나 이기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하면서 ‘텍스트’보다는 ‘컨텍스트’에 주목한다. 호남차별에 대하여 같은 내용이라도 호남 출신인 강준만 교수의 주장과, 대구 출신인 유시민 전장관의 그것을 궤를 달리하여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출신성분(?)을 밝히면서까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칼럼에 어떤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담론이 이익집단 간 쟁투로 비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최근 법무부는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유지 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입장정리를 하였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에 따르면 2017년 완전 폐지가 예정되었으나 국민여론상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따라 2021년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가 잘 정착되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한 국가의 법조인 양성제도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자인한 꼴이다. 더구나 2009년 변호사시험법이 제정된 이후 약 6년 동안의 시간도 모자라서 유예기간을 더 늘리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접할 수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기 때문에 각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이고 현시대에 가장 적합한 제도는 무엇인지, 가장 부작용이 없는 제도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성적인 토론 없이 ‘음서제’니, ‘사다리 걷어차기’니와 같은 자극적인 레토릭만 난무하는 입씨름은 토론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쟁점은 계급 상승을 온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가 여부다. 로스쿨을 반대하는 국민감정은 위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계급의 고착화가 문제되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천에 난 용’은 그 상징적 의미가 크다. 과연 사법시험은 계급간 이동의 마지막 희망이고 로스쿨은 부의 세습일까. 서울대 연구팀이 최근 로스쿨 1~3기 출신 법조인들과 같은 시기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을 다닌 법조인, 로스쿨 도입 이전 연수원을 거친 법조인 등 세 집단 1,020명을 분석해본 결과, 로스쿨은 물론 연수원 출신들도 부모가 고학력자이면서 고소득 직업을 가진 비율이 높았다. 결국 계급 상승이 어렵다는 점에서는 양 제도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평균 수험기간이 약 5년이고, 1년에 1천만 원 이상의 학원비 등이 소요되는 사법시험에 비해 로스쿨생 가운데 기초수급자를 포함하여 소득분위 5분위까지는 50% 이상의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

 한편 사법시험으로 신분상승을 경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로스쿨 제도를 만들어 희망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주장도 있다. 노무현은 연수원 기수로 획일화된 법조 카르텔을 깨고 싶어 로스쿨을 도입했다. 그는 자신의 온전한 노력만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통감했을 것이고, 고졸 출신 법조인으로서 겪은 완고한 집단의 단단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취에 대해 사회구조적으로 객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자수성가형 인간은 ‘내가 해봐서 안다’는 자부심에서 멈춘다. 그래서 개천에 난 용은 개천을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총총 불빛을 밝히는 원룸촌을 친구와 거닐며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대한민국에 공부 꽤 한다는 사람들의 인구밀도가 이처럼 높은 동네는 없을 거야” 친구는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그때 그 불빛을 밝히던 수많은 개천 출신 이무기는 용이 되었을까.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대표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