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치열한 씨앗 전쟁 중이다
지금, 세계는 치열한 씨앗 전쟁 중이다
  • 황의영
  • 승인 2015.12.06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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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마늘까지도 중국에서 수입해온 씨마늘(種球)을 심습니다.” <대서>마늘의 주산지인 경남 창녕 마늘농가의 한숨 섞인 하소연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마늘생산 농가는 자가 생산한 마늘 중에서 충실한 것을 골라 종구로 섰다. 그러나 올해에는 난지형마늘의 경우 중국에서 씨앗을 들여와 농가에 공급됐다. 과거에는 중국산이 종구용으로 수입되지 않았다. 식용으로 들여온 것을 일부 농가에서 종구로 사용했다. 하지만 금년에는 종구용으로 5,200t 이상 수입됐다. 민간업체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수입권을 공매받아 들여온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무역회사에 있을 때 생강종자를 수입해달라는 생강 주산지 농협의 요청으로 종강(種薑)을 들여와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1970~80년대만 해도 농가에서는 벼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농작물 씨앗을 자가생산(自家生産)했다. 자기가 수확한 농산물 중에서 때깔 좋고 잘 여문 충실한 것을 골라 다음해 농사의 종자로 쓰기 위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 배추·무도 수확을 다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두고 짚이나 거적을 덮어 얼지 않게 월동을 한다. 봄이 되면 장다리가 되어 노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농가가 대부분의 농작물 씨앗을 종묘상에서 구입해 농사를 짓는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 죽을지라도 다음 농사를 위해 종자를 남겨둔다는 뜻으로 농부에게 씨앗은 목숨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농부가 목숨과도 바꾸지 않던 그 소중한 씨앗을 종묘상에서 로열티(Royalty)를 주고 구입해야하는 상황이다. 토종씨앗들이 다국적기업에 종속돼 ‘상품’이 된 것이다. 종자가격이 금(金)값보다 비싸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실제로 파프리카·고품질 토마토 가격은 금값보다 두 세배 비싸다. 지금 전 세계는 우량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종자 산업은 그 자체가 반도체에 비견될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집약적 산업이다. 미래의 식량안보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선진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종자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세계종자산업 규모는 1,000억 달러가 넘는다. 기후변화 대응, 웰빙 등의 추세로 보면 앞으로 고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유망산업임이 분명하다. 유전자원이 풍부한 미국·중국·인도 등이 중심 시장을 형성하고 프랑스·브라질·일본 등 6개국이 전체 시장의 60%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종자산업은 기술과 자금력이 풍부한 다국적기업들이 M&A(인수합병)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개발품목을 늘리고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몬산토·시젠타 등 글로벌 10대 종자기업의 시장점유율이 70%를 웃돌고 있어 급속한 과점화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또 이들 다국적 종자회사들은 곡물회사와 전략적 제휴(몬산토와 카길, 시젠타와 AMD)를 통해 종자 개발에서 가공, 유통까지 수직계열화 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시장규모가 크고 성장률이 높은 중국, 인도 등과 같은 신흥국시장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종자시장은 이렇게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 종자산업 현실은 어떤가? 국내 종자산업의 농업분야 시장규모는 5억 달러 내외로 세계시장의 1% 정도에 불과하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국내 채소종자의 64%를 국내 종자업체가 생산했으나 흥농종묘·중앙종묘가 세미니스(네덜란드)에 인수됐다가 몬산토(미국)에 M&A되었고 서울종묘는 노바티스에 인수됐다가 현재는 시젠타(스위스)에, 청원종묘는 사카다(일본) 등 주요 종자회사가 모두 다국적기업에 인수돼 종자주권이 상실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유전자원을 26만종이나 가진 세계 6위 국가임에도 국산종자보급률이 매우 저조하다. 채소·식량위주의 먹거리 종자개발에 치중한 결과 과수·화훼의 국산종자 보급률은 각각 10%, 5%에 불과하다. 화훼수출이 늘어날수록 해외에 막대한 로얄티를 지급해야 한다. 청양고추·금싸라기참외·불암배추 등 우리가 개발한 종자도 이제는 로열티를 지급하고 사야한다. 일본 종자회사가 등록한 딸기, ‘육보’ ‘장희’ 등의 종자 로열티로 몇십 억 원을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자산업은 개발도 중요하지만 치밀한 계획과 등록을 통해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품종보호권이 설정된 품종의 로얄티 지급의무로 인해 지급액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 800여개의 종자회사가 있으나 규모가 매우 영세하다. 국내시장의 21%를 점유하고 있는 농우바이오가 다행히도 2014년 농협에 인수돼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국가연구기관·대학·대기업 등의 정책과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종자회사의 기술력과 결합하여 세계적인 종자회사로 성장시켜 잃어버린 식량주권을 되찾고 우리 젊은이들이 종자산업의 주역이 되고 많은 일자리도 제공했으면 좋겠다.

 황의영<전북대학교 무역학과 강의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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