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은 사람이 아닌 도깨비인 줄 알고 자랐던 세대는 알 것이다.‘표식 없는 간첩을 신고하자’는 엄청난 외침을 말이다. 간첩신고의 노래까지 등장해서 코흘리개 아이들이 부르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웃긴다. 간첩이 학생들에게 발각될 정도로 어수룩하다면 절대로 간첩이 아니다. 그래서 술 먹고 횡설수설하는 사람, 외지에서 굴러온 모자라 보이는 청년 등이 신고 대상이었다. 국가가 그렇게 몰고 간 것이다. 1970년대 전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시내로 가장행렬을 나갔다. 커다란 전화기 모형에 112를 적었다. 간첩을 신고하자는 것이다. 시대가 그랬으니 어른들도 은근히 동조했을 것이다. 시대는 시대에 맞는 풍경이 있다.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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