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오송회
야만의 시대, 오송회
  • 권익산
  • 승인 2015.12.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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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가을도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었고, 대학입시를 앞둔 교실에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해 11월에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지만 군산 제일고 선생님들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시절 국가는 국민들에게 수상한 유인물을 보면 신고하라고 명령하였고, 국민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버스에 놓여 있던 월북 작가의 시집 복사본을 수상하게 생각한 버스 안내양의 신고로 시작된 오송회 사건은 이러한 성실한 시민의 신고를 정권이 어떻게 악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신고가 들어 온 시집을 국문과 교수가 아닌 철학과 교수에게 검증해 달라고 의뢰한 경찰의 무지함도 그렇지만 시의 한 구절을 근거로 고정간첩이 배포한 유인물이라는 그 철학교수의 진단은 창조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 이것을 근거로 수사에 착수해 감옥을 살게 만드는 검찰과 법원의 수사와 재판 과정은 개그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만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개그가 현실이 되는 시대였다.

4.19 혁명일이 기념일에서 제외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이야기 하던 선생님들은 정권에 의해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이적단체를 만든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만들어졌다.

11월 2일 끌려가기 시작하여 1월 11일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 영장 없는 구금과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은 필수코스로 저질러졌고, 고문 사실을 숨겨야 하니 가족이나 변호인을 만나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었다. 또, 해당 선생님들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파면되었다.

오송회라는 이름은 또 어떤가.

다섯 명이 소나무 아래에서 모였다고 해서 붙인 오송회라는 이름을 정작 본인들은 경찰이 알려주어서야 알았다. 그렇게 선생님들은 본인도 모르는 반국가단체의 수괴가 되고, 구성원이 되어갔다.

법정에서 고문을 당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선생님들의 호소에도 판사라는 사람은 지성인 몇 대 맞았다고 허위 진술을 할 수는 없다며 오히려 고문을 두둔해 주었다.

이러한 야만적인 행위가 당연한 듯 벌어지는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무고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없는 증거를 만들어야 했다. 이에 경찰은 제자들을 잡아다 스승의 이적 행위를 일러바치라고 때리고 협박하였다. 이렇게 하여 잔뜩 겁을 집어먹은 제자는 법정에 끌려 나와 검사의 호통 속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의 이적행위를 고발해야 했고, 선생님은 포승줄에 묶인 채 제자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 시절은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패륜을 저지르던 시대였다.

그 때의 제자들은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하나 둘씩 알아가게 되면서 선생님을 감옥에 보냈다는 자책감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민주화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선생님들이 당했던 그 고문과 감옥살이였다. 제자들은 교도소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빨래라도 해드려야겠다고 말하며 그렇게 감옥으로 걸어갔다.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오송회 관련자들은 사면복권이 되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었기에 이제는 풀려나 온 선생님들이 제자들의 자유를 위해 뛰어 다녀야 했다.

야만과 패륜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에는 재심을 통해 오송회 사건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되어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다. 이때 법원은 정치권력에 휘둘려 잘못된 판결을 내렸던 것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죄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2011년에는 그동안의 피해에 대하여 국가가 보상하도록 하는 판결을 얻어냈다.

야만과 패륜의 시대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려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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