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바로세우기’와 ‘전주정신의 숲’
‘역사바로세우기’와 ‘전주정신의 숲’
  • 김윤덕
  • 승인 2015.11.30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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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었던 YS의 영결식을 지켜보는 내내, 그의 죽음과 함께 DJ, YS로 상징되던 정치적 거인들의 시대가 영원히 저무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역사는 앞으로 YS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들이 풍미하던 한 시대는 내 청춘의 시절이기도 하였다.

삼당합당, IMF 위기 등 YS가 현실정치인의 끝자락에서 보여준 몇 가지 모습은 분명히 엄격하게 비판받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집권 시절에 진행되었던 ‘역사 바로 세우기’만큼은 후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영삼 정부 당시 진행되었던 역사 바로 세우기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과정 자체가 극적이었던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로 상징되는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도하였다. 둘째, 수십 년 동안 질곡에 빠져 있던 한국 현대사의 근본적인 병인이 5.16이며, 5.16은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셋째,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12.12 또한 군사 쿠데타라는 점을 적시했고, 이른바 ‘하나회’의 청산과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단죄가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은 ‘5.18 광주’로도 이어져 YS는 5.18의 성격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이러한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YS는 유신 시대 폭력적으로 국정화된 중고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전환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YS의 공과는 낱낱이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지고 그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역사 앞에 겸허해지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감추고 싶어도 숨길 수 없고 아무리 드러내고 싶어도 당대와 후대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자기자랑일 뿐이다.

YS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나조차도 그의 영결식을 치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낯뜨겁게 자기 입으로 ‘정치적 아들’이니 ‘정치적 제자’를 자처하는 한때 YS의 직계였다는 정치인들은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YS가 병상에서 힘겹게 투병을 하고 있을 때 그의 후계를 자처하는 김무성 서청원 등 새누리당의 지도부 인사들은, 역사바로세우기를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졸속 추진하는 중이었다. 그저 YS의 정치적 후광만을 이용하려 할 뿐인 이들의 작태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부화뇌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YS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신념에 따른 결기는 배우지도 못한, 술수와 모략의 정치 모리배들만이 남은 듯하여 YS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YS 시절의 ‘역사바로세우기’와 현재 진행되는 ‘역사 국정화’ 파동은 그 지향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YS는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음지에 묻혀 있던 역사적 상처와 질곡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노력했고,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다시 자신들만의 밀실로 끌고 들어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 한다. 그 차이가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이끌어냈고, 전국민적 저항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진다. 부끄럽다고 감추려고 아무리 기를 써도 역사적 정보는 당대를 순식간에 통과해 미래에 가 닿는다.

국정화 파동과 YS의 서거가 이어지던 차에, 전주시에서 ‘전주 정신의 숲’이라는 연구 토대 기관을 건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울적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청량함이 느껴지는 소식이었다.

전주시에서 밝힌 설립 취지에 의하면 전주 관련 기록물의 집대성과 공유, 재분배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을 기본으로 하여, 전주라는 도시의 고유성과 전주시민의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창한 삶을 살아온 거인들의 위인전이 아닌, 전주라는 도시가 만들어지고 성장해오는 과정을 함께 해온 과거와 현재의 전주시민들의 풀뿌리 인생 또한 애정을 가지고 부각시키기 위한 기관이라고 한다.

부질없이 역사적 후광 쟁탈전을 벌이거나 해석의 자의성에 기대어 국민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역사 전쟁만을 일삼는 이들을 지켜보던 탓인지, 전주가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일의 가치가 더욱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후손들에게 떳떳한 역사를 물려주는 일일 터… 과연 전통문화중심도시 전주는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역사를 일시 점유(占有)할 뿐, 역사를 자신만의 것으로 전유(專有)하려 해선 안 된다는 의식이 ‘전주 정신의 숲’의 출발점일 것이다. 물려받은 것은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되물려주고, 후손들을 위해 당대의 사실을 친절하게 기록하여 전하는 선조가 되겠다는 의식에 공감한다. 또 전주 기록문화의 집대성을 위해 민관이 함께 하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현장에 대한 기대감 또한 크다.

하지만, 추진단만의 역량으로 이 일이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 스스로 역사의 객체나 독자가 아닌 전주시 발전의 주체이자 기록자라는 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이 사업은 본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즉,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새로운 전주의 역사가 쓰인다. 아마, 이게 오늘 ‘전주정신의 숲’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또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케 된다. 그래서 우리 집 골방에 처박혀 있는 사진 한 장이 전주의 변화상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고심해보려 한다.

김윤덕<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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