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살 1위인데, 우울증약 사용은 최저
한국 자살 1위인데, 우울증약 사용은 최저
  • 김형준
  • 승인 2015.11.2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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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한국의 우울증 치료제 복용량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의 보건의료 보고서(Health at a glance 2015)에 따르면 한국의 항우울제 소비량(2013년 기준)은 20 DDD로 28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칠레(13 DDD) 다음으로 낮았다. DDD는 국민 1,000명 중 매일 약을 복용하는 사람의 수를 뜻한다. 반면 아이슬란드(118 DDD), 호주(96 DDD), 포르투갈(88 DDD) 등은 항우울제 소비량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혔다. OECD국가의 평균도 58 DDD로 한국의 세배에 가깝다. 특히 한국은 감기에 쓰는 항생제 복용량이나 당뇨약 사용량은 많은 편이고 대부분 약물의 사용량이 OECD 평균을 웃돌았으나 항우울제 사용만 유독 두드러지게 적었다. 이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직 사회 전반에 있는 뿌리깊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우울증은 매우 흔하게 나타나며 조기에 치료할 경우 완치될 가능성이 높지만, 방치할 경우 자살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9.1명(2013년 기준)으로 OECD에서 가장 높고 11년째 1위이다. 2위인 헝가리(인구 10만명당 19.1명)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11년 31.7명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지만 OECD 평균(12명)의 두 배가 넘는다. 또한 자살시도자는 2013년 2만5천748명으로 나타나는 등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자살자의 60%는 우울증 상태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나와 있고 전체 우울증 환자의 15%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할 만큼 매우 흔한 정신질환으로 2012년 복지부의 발표에 의하면 전체 국민의 약 20%가 평생에 한 번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하면 완치율이 매우 높은 병이다.

 그동안 실제 진료현장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아직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특히, 보험 가입문제나 진료기록이 외부로 알려져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치료받기를 망설이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다. 심지어 건강보험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진료비를 100% 일반진료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을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가 늘고 있지만, 보험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금 지급에서 불이익을 주는 일부 보험사의 잘못된 관행으로 정신질환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여전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보험사의 관행이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게 만들어, 결국 개인의 건강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사회적으로도 국민의 정신보건에도 상당한 손실을 조장해 왔다고 보인다.

정신의학, 즉 학문적인 입장에서도 우울증을 포함한 모든 정신질환이 보험사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질병이나 재해를 불러올 상황을 야기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막연한 인식만으로 뚜렷한 의학적 근거 없이 가입을 거부해왔다. 이것은 마치 자주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폐암이나 폐결핵에 걸린 확률이 높으니 감기의 병력을 가진 사람은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것과도 같은 논리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나중에 취직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또는 회사에 알려져 진급 등의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법원의 영장이 없는 한 ‘정신과 진료에 대한 의료정보 노출은 절대 있을 수 없고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설명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인식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고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도 많다.

 그러므로 이런 관행과 편견이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와 함께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상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온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시급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도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OECD 발표를 계기로 사회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기피했던 환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 국민들의 정신건강증진과 자살률 감소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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