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에 흥을 더하는 건 사람이다
판에 흥을 더하는 건 사람이다
  • 이문수
  • 승인 2015.11.18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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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미술관은 아시아 미술을 전북에 불러들이고, 전북미술을 아시아로 나가게 하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그 첫걸음을 내디뎠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지난달 말에 아시아 레지던시 현장을 탐방하는 6박 7일간 공무국외여행을 다녀왔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와 페낭,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와 반둥. 쉽게 접하기 힘든 아시아 변방에 초점을 맞추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버스도 탔고, 소쿠리 같은 경비행기에 몸을 맡기기도 했고, 걷고 뛰어서 현장에 갔다. 그곳에서도 치열한 미술가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진솔한 눈빛과 마주했다. 생동감이 충만한 변방에서 투박하고 거친 야성의 힘이 넘치는 진실한 미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족자비엔날레(Jogjok biennale)에서도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혀가는, 소위 서구의 시각에서는 변방으로 분류되는 소수 미술가를 만날 수 있었다. 족자비엔날레는 족자카르타, 자카르타, 반둥, 나이지리아의 젊은 미술가들이 협업해서 2년마다 여는 현대미술의 축제다. 과하게 꾸미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몸짓들이 진정성 있게 와 닿았고, 다양한 장르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거침없는 예술적인 행위 속에서 ‘참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래서 현대미술과 만나면 불편하면서도 행복하다. 내면에 도사리는 고정관념이 이질적인 것과 부딪히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이 해방의 아이콘. 판에 흥을 더할 아시아의 미술가를 불러들일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완주군 상관면에 있는 ‘전북도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가 그것이다. 낡은 건물을 재활용하고자 내부 수리를 하고 있다. 창작스튜디오는 미술가가 체류하면서 창작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소통하는 미술담론의 산실이다. 역동적인 아시아 미술의 힘을 주체적인 시각에서 응집하고 환류하는 지도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상황에서 벗어나, 보자기처럼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열린 미술판을 깔고자 한다. 그래야만 건실한 씨앗이 제자리를 잡고 백화제방(百花齊放)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연장전시를 하는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도 절정을 맞고 있다. 탈 서구적인 시각에서 아시아 사회를 현대미술로 담아내는 국제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 움직이니까 뭔가에 부딪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증거라 생각하면서 넘고, 돌고, 더러는 정면으로 뚫어서 해결해 왔다. 참으로 바쁜 날들을 보냈다. 짙푸른 초록과 함께 흐르는 땀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고, 봄바람에 흩날리는 복사꽃과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한숨 돌렸는지 쌀랑한 초겨울 비를 맞고도 붉게 물든 자태를 뽐내는 단풍이 보인다. 초록의 절정이 단풍이라 했던가.

매혹적인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는 바람 소리를 내고 있다. 필자는 미술감상을 바람 소리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 소리는 바람과 구멍이 만나야만 낼 수 있는 소리다. 바람과 구멍의 예기치 않는 마주침에서 만들어지는 것. 제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훌륭한 관객을 만나야만 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오늘도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등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했다. 낯선 현대미술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친한 친구와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속삭이기도 하고, 뭔가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홀로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돌았고, 뭔지 모를 뭉클함이 일기도 했다.

많은 관람객이 아시아 현대미술을 즐기고 있다. 현대미술 작품은 하나의 압축파일과 같아서 관자의 삶의 배경과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하고, 짓누르는 것을 딛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을 준다. 그래서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창조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역시 벌여 놓은 판에 흥을 더하는 건 누가 뭐래도 사람이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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