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바라보는 새만금
새롭게 바라보는 새만금
  • 강현직
  • 승인 2015.11.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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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새만금에 다녀왔다. 안내를 받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새로 조성된 토지를 볼 수 있었다. 바다이었던 곳이 뭍으로 변해 있었다. 유난히 날씨도 맑아 시야도 확 트였고 그 넓은 대지위의 지평선과 또 물과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도 모두 볼 수 있었다.

1991년 첫 삽을 뜨고 25년 인고의 세월이 그곳에 있었다. 33.9㎞의 방조제가 완성된 지 5년, 새만금 총 면적 1억2천만평 가운데 절반이 넘는 9천만평이 당장이라도 개발이 가능한 땅으로 변해 있었다. 함께 간 모든 이들도 새만금의 속살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염분이 서서히 빠지는 대지에는 식물들도 자라고 야생동물들도 서식한다니 내일의 땅에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새만금’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공모한 새만금 사진전에서도 새로이 나타나는 새만금의 모습들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대상을 받은 ‘아름다운 가력공원’은 새만금의 또 다른 매력을 뽐냈고 최우수상을 받은 ‘머나먼 여정’은 긴 세월을 보내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신천지의 신비함을 담고 있었다.

사실 새만금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새만금에는 옛 선비들의 정신과 기개가 깃들어 있는 곳이자 고대 마한 시절 해상의 중요한 루트이기도 했다.

새만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최치원이다. 신라말 대학자이자 사상가인 최치원은 새만금 방조제의 중심인 신시도에 단을 쌓고 글을 읽었다는 것이다.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 대륙까지 울렸다고 전해지니 그의 학문적 명성이 중국에서도 크게 칭송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최치원은 중국에서 더 환대를 받는다. 전라북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장쑤성의 난징에는 당나라시대의 원형을 복원한 초대형의 7층탑이 있는데 2층에 ‘최치원의 방’이 있고 초상화와 시문이 진열되어 있다. 최치원은 당시 양국을 오가며 동방 최고의 지식인으로 존경받았다. 고군산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최치원에 대한 기억들은 새만금 지역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온 일종의 문화이기도 했으며 영웅이자 신선이었던 그의 정서와 무게는 새만금에 녹아 있는 정신이기도 했다.

새만금은 또 ‘홍길동전’이 지어진 땅이기도 하다. 변산에 은거해 있던 허균은 고부에 사는 남궁두를 만나 후세에 길이 남은 ‘남궁선생전’과 ‘홍길동전’을 짓는다. 도사 남궁두의 행적과 수련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남궁선생전’은 전기에 가깝고 널리 알려진 ‘홍길동전’은 홍길동이란 실존 인물에 영웅담과 선도적 요소를 가미해 저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홍길동은 허균보다 1백여 년 앞서 살았던 의적으로 활빈당을 조직해 활동했음은 물론 이상국가인 율도국까지도 존재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문장가인 허균은 새만금 이곳에서 자유의 정신을 일깨우며 선도적 상상력을 펼쳤던 것이다.

새만금에 담긴 기개와 정신은 고대로부터 자연스럽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득한 고대에 진시황이 대규모 탐사대를 새만금에 보냈듯이 새만금은 동아시아 바닷길의 주요 거점이었고 중국인들도 경외롭게 대하던 동경의 땅이었다. 새만금은 지금 새로이 탄생하고 있지만 예로부터 존중되어 온 새만금의 정신, 새만금의 인문학은 넓게 드러난 새 땅 위에 다시 꽃피울 준비를 하는 듯하다. 누군가 한반도를 일어서 있는 호랑이로 비유하며 새만금은 호랑이의 생명의 원천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다행스럽게 새만금에 새로운 땅이 태어나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입주하는 기업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땅 위에 새 길도 열리고 새만금은 머지않아 잉태한 꿈을 실현하며 풍성한 결실을 볼 것이다. 그래서 전통과 정신이 살아있는 새만금은 전북의 미래요 대한민국의 희망인 것이다.

강현직<전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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